민우회

원어 항목명 民友会
한자 民友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0년 9월 15일
해체 시기/일시 1923년 7월
최초 설립지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구 소테스정
원어 항목명 民友会
성격 1920년대 일본 나고야 지역 조선인 민족 단체
설립자 한세복 등
정의

1920년 일본 나고야시에서 조직된 민족적 성격의 재일 조선인 단체.

개설

1920년 9월 15일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조직된 민우회는 나고야 지역 재일 조선인 단체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민우회는 1920년 1월에 결성된 조선인노동회를 그 전신으로 한다. 9월 15일 창립총회는 나카구[中區] 소테스정[蘇鐵町]에 있는 친화회 공회당(親和會公會堂)에서 우리 말로 진행되었다. 총감(摠監) 겸 통신부장 한세복(韓世復), 회장 겸 지부장 김경선(金慶善), 총무 겸 외교부장 장세호(張世浩) 등이 간부로 선출되었다. 한세복은 당시 나고야 지역 재일 조선인 사회의 리더 격인 인물이었다.

설립 목적

민우회는 친목과 상호 부조, 고학생의 학비 보조 등을 표방하고 조직되었다. 1923년 상애회로 합류되기 전까지 민우회는 조선인의 민족적 단체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 점은 창립총회 장소가 빈민가에 있는 공회당에서 우리 말로 진행되었으며, 이후 각종 행사에 나고야 지역 일본인 사회 운동가나 노동 운동가들이 다수 참가하여 “조선 독립” 등을 언급하기도 했던 점에서 알 수 있다.

변천

민우회의 전신은 1920년 1월에 결성된 ‘조선인노동회’이다. 조선인노동회는 1920년 4월에 재명조선인회(在名朝鮮人會)로 개칭되었다. 재명조선인회가 중심이 되어 1920년 9월 15일 민우회가 창립되었다. 민우회는 1923년 7월에 결성된 ‘상애회(相愛會) 아이치현 연합회[愛知縣聯合會]’에 합류하여, 아이치현 최대의 재일 조선인 단체가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2년 10월 15일 나카구 야바정[矢場町]에서 회원과 각지 사회 운동가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前) 회장 김경선과 부회장 이정희(李廷禧)에 대한 표창식’이 거행되었다. 가메다 료스케[龜田了介] 등의 지원 연설에서 조선의 독립이나 조-일 민중 연대 등이 거론되어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1922년 11월경 민우회 총재 한세복 등을 중심으로 도쿄[東京], 오사카[大坂], 교토[京都], 고베[神戶] 등 각지의 재일 조선인 단체를 대상으로 ‘전국적인 조선인 단체의 합동’을 목표로 각지에서 준비 작업을 진행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민우회는 일본 나고야 지역에서 조직된 최초의 재일 조선인 단체이며, 특히 민족 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2010년 일조협회 아이치현 연합회[日朝協会愛知県連合会]에서 발행한 『전전기·아이치현 재일 조선인의 제단체(戦前期·愛知県における在日朝鮮人の諸団体)』에서도 민우회를 ‘민족 운동 단체’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참고문헌
  • 김동명 외,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단체 편람』(민족문제연구소, 2010)
  • 『戦前期·愛知県における在日朝鮮人の諸団体』(日朝協会愛知県連合会, 2010)
  • 『名古屋新聞』(1920. 9. 16, 1922.10. 16)
  • 『新愛知新聞』(1922. 10. 16, 11. 18,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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