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유학생회

원어 항목명 大韓留学生会
한자 大韓留學生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도쿄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6년 9월
해체 시기/일시 1907년 5월
원어 항목명 大韓留学生会
성격 일본 유학생 단체
정의

1906년 일본 도쿄도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의 친목과 단결을 위해 설립된 유학생 단체.

개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 점차 노골화되던 때 조직 간의 분열 및 난립을 넘어 도쿄 유학생 전체의 단결과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결과 1906년 9월 2일 대한유학생구락부와 한금청년회가 통합하여 대한유학생회를 결성하였다.

설립 목적

대한유학생회는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의 친목 도모, 학식 교환, 서양 문물의 수용을 통한 국가 실력 배양을 목적으로 하였다.

변천

대한유학생회는 도쿄에 있는 유학생 여러 단체의 중심 인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결성되었다,. 창립 당시 회장에 상호(尚灝), 부회장에 최린(崔麟)이 선출되었다. 1906년 11월 회장 상호가 귀국하자 최석하(崔錫夏)가 회장을 맡았다. 1908년 1월 최린과 박승빈(朴勝彬)이 회장과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2월 박승빈과 유승흠(柳承欽)이 각각 회장과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3월 이진우(李珍雨)가 부회장이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한유학생회의 주요 활동으로는 토론회 및 연설회 개최, 기관지 『대한유학생회학보』[1907년 3월 창간] 발행, 국채 보상 운동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각 단체의 통합 문제로 인해 『대한유학생회학보』제3호[1907년 5월] 발행을 마지막으로 대한유학생회의 활동은 마무리되었다. 대한유학생회는 1908년 1월 대한학회로 흡수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한유학생회는 대한제국 마지막 시기 재일 조선인 유학생 통합 단체로 의미가 있으며, 이후 유학생 통합 단체를 결성하는 데 토대를 마련하였다.

참고문헌
  • 김기주, 『한말 재일 한국 유학생의 민족 운동』(느티나무, 1993)
  • 정태주, 「대한흥학회의 성립과 활동」(단국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96)
  • 표영수, 「대한제국 말기 재일본 유학생의 애국 계몽 사상」(『숭실사학』11, 숭실대학교사학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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