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內鮮興助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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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內鮮興助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효고현 고베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3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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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內鮮興助会 |
성격 | 내선융화단체 |
설립자 | 고타니 이와오|마에다 다모쓰|야스에 쇼이치|최인순 |
1931년 일본 효고현 고베시에서 결성된 재일 조선인 내선 융화 단체.
내선흥조회는 일본 고베 지역의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직업 소개, 주택 문제 해결 등을 통해 내선 융화 사상을 보급,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방공 사상과 국가 관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내선흥조회는 설립 초기 조선인에 대한 진료, 식사 급여, 주택 분쟁 조정 등에 치중하였다. 1932년부터는 재일 조선인 실업자의 만주 파견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검토하였다. 이를 위해 이시이[石井] 상임이사를 만주에 파견하였고, 해동교풍회(海東矯風會), 응선친목회(鷹鮮親睦會) 등과 함께 효고현 내선협회를 방문하여 내선협회의 사업 부진에 대해 항의하면서 주택 문제와 만주 시찰 등을 요구하였다. 또한 일본인 집주인들이 조선인에게 집을 빌려주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32년 7월 주택 문제 좌담회를 3차례 개최하여 내선흥조회의 입장을 전달하는 한편, 8월 모든 집주인을 조정부 회원으로 망라하고, 관계 관공서와 조정 위원, 방면 위원을 고문으로 초빙하여 조선인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다. 1934년 여름 산노미야경찰서의 조선인 거주 판자집 철거 사건과 1935년 2월 공사 인부의 판자집 철거 사건은 내선흥조회의 간청에 의해 진정되었다. 1934년 6~7월 고시 사회과의 후원으로 교육영화회와 강연회를 개최하여 재일 조선인에 대한 방공(防空) 사상의 보급과 국가 관념의 함양을 위한 활동도 전개하였다. 1935년 『내선흥조회업적월보(內鮮興助會業績月報)』라는 기관지를 발행하였다. 특히 1936년 이후에는 등화관제요령이라는 전단지를 산포, 조선인 방호단의 조직과 함께 조선인 가정을 방문하여 가정 방공을 독려하고 방공 연습에 적극 참여할 것을 홍보하는 등 방공 사상 강화를 위한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37년 조선 여성을 국방부인회에 가입시키고 국방부인회 취의서와 회칙 등을 조선어로 인쇄하여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200여 명의 조선인 회원을 확보하였다. 또한 10월 조선인 청년들로 일동청년단을 조직하여 총후의 국민운동에 동원하였다. 그리고 내선 융화가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조선인의 위생 관념 결여 때문이라며 조선인에 대한 위생 교육을 강화하였다.
내선흥조회는 고베 지역 재일 조선인들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재일 조선인들에게 국가 관념과 방공 사상을 강화함으로써 재일 조선인을 침략 전쟁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