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선융화회

원어 항목명 內鮮融和会
한자 內鮮融和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효고현 고베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3년 1월 27일
개칭 시기/일시 1924년 8월
해체 시기/일시 1925년
최초 설립지 일본 효고현 고베시 쓰쓰이정
원어 항목명 內鮮融和会
성격 내선융화단체
설립자 김영달
정의

1923년 1월 27일 일본 효고현에서 조직된 재일 조선인 내선 융화 단체.

개설

내선융화회는 인삼상으로 성공한 김영달(金永達)이 중심이 되어 1923년 1월 27일 조직한 일본 효고현의 내선 융화 단체이다. 내선융화회의 주된 활동은 무료 혹은 실비 숙박소의 운영, 직업 소개 등이었으며 1925년 효고현 내선협회에 흡수되었다.

설립 목적

내선융화회는 내선인의 융화 및 조선인의 문화적 향상을 목적으로 하였다.

변천

내선융화회는 1923년 1월 27일 김영달이 중심이 되어 효고현의 지사, 고베시장, 시의회 의장 등의 일본인 유력자의 찬동과 찬조금을 얻어 효고현에서 재단 법인으로 조직되었다. 고베시의 쓰쓰이정[井町]에 사무실을 두었으며, 찬조금과 인삼 판매 수익 등으로 재정을 확보하였다. 인삼 판매 대금 수익으로 재정을 확보하였다는 것은 인삼 판매업에 종사하였던 김영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924년 8월 내선융화회의 명칭을 황아회(黃亞會)로 개칭하고 김영달이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자금 운용을 둘러싼 내선융화회 내 조선인 간 분쟁으로 일부 회원이 현지사를 회장으로 옹립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활동이 침체되자 1924년 12월 14일 김영달은 효고현 선인청년단을 조직하여 근검 저축을 장려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5년 효고현이 주도하여 효고현 내선협회를 설립하자 내선융화회는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내선융화회는 설립 직후부터 고학생 구제를 위한 합숙소의 설립, 직업 소개, 조선 문제에 대한 강연회, 진재조난 조선인 추도회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황아회로 개칭한 이후에는 실비 숙박소와 직업소개소를 운영하고 빈곤자와 고학생의 보호, 일본어 강습 등의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내선 융화를 위한 잡지의 발간도 계획하였다.

의의와 평가

내선융화회는 효고현 지역의 재일 조선인에 대해 내선 융화의 정신을 함양하고자 하였으나 내분으로 인해 효고현 내선협회에 흡수되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 김동명 외,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단체 편람』(민족문제연구소, 2010)
  • 堀内稔, 「兵庫縣朝鮮人融和團體の系譜: 協和會成立まで」(『在日朝鮮人史硏究』2, 緑蔭書房,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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