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민주통일동지회

원어 항목명 在日朝鮮民主統一同志会
한자 在日朝鮮民主統一同志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8년 10월 8일
원어 항목명 在日朝鮮民主統一同志会
성격 재일 한인 통일 운동 단체
설립자 이강훈[위원장]
정의

1948년 10월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한 이강훈 등이 결성한 재일 한인 통일 운동 단체.

개설

1948년 8월 국내에서 단독 정부 수립가 수립되자 재일 한인 사회에서는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남북 협상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있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이강훈, 문동환 등이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해 탈퇴하고 1948년 10월 8일 재일조선민주통일동지회를 결성하고, 김구의 정치 노선을 지지하였다.

설립 목적

재일조선민주통일동지회 제2기 강령에 의하면 설립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동지회는 반제, 반봉건, 반파쇼에 대한 투쟁을 관철하는 결사이다. 둘째 우리 동지회는 식민지, 반식미지, 제국주의의 종속국에서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피압박 민족의 의의적 결사이다. 셋째 우리 동지회는 평화 세력의 일환으로 침략 전쟁을 방지하고 세계에 평화와 안녕을 확립하고자 하는 평화 애호적 결사이다. 넷째 우리 동지회는 조국의 민주적 발전을 추진시키는 정치적 결사이다. 다섯째 우리 동지회는 조국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혁명적 결사이다.

변천

재일조선민주통일동지회 결성 당시 임원으로 위원장 이강훈, 부위원장 문동환·황갑성, 서기장 고성호, 위원 김용태·서종실을 선출하였다. 1951년 8월 16일 제2회 전체 대회에서는 위원장 이강훈, 부위원장 문동환·황갑성, 서기장 고성호를 선임하였지만 1964년 2월 13일 위원장 이강훈이 스파이라 하여 제명 처분당하였다. 이후 문동환 위원장 체제로 운영되었지만 활성화되지 못하고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48년 남한과 북한에 각각 단독 정부가 수립되었지만,재일조선민주통일동지회는 남북한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9년 7월 8일 재일조선인연합회가 해산당하자 일본 정부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으며, 간사이 지방협의회는 통일촉진회의 명의로 반대 성명을 발표하였다. 1951년 7월 8일 재일본조선통일민주전선에 가맹할 것을 결의하였으며, 1953년 12월 위원장 이강훈이 재일본조선통일민주전선에서 탈퇴하자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현황

재일조선민주통일동지회 본부는 도쿄에 두고 지방협의회를 간토[關東], 간사이[關西], 도후쿠[東北], 시코쿠[四國] 등 네 곳에 두었다. 1951년 1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동참하는 재일본조선통일민주전선이 결성되자 가담하였다.

의의와 평가

재일조선민주통일동지회는 초기에는 독자적인 재일 한인 사회 통합 운동을 전개하였지만 재일본조선통일민주전선에 가입함으로써 의미를 상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본조선통일민주전선과 별도로 통일 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전준, 『조총련 연구』(고려대학교 출판부, 1972)
  • 『재일 조선인 그들은 누구인가』(삼인, 2003)
  • 지충남, 「재일 동포 사회의 ‘제3의 민족 통일 운동’ 고찰」(『한국동북아논총』18-4, 한국동북아학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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