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阪神消費組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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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阪神消費組合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31년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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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阪神消費組合 |
1931년 3월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서 결성된 재일 조선인 생활 소비조합.
일본에서는 1920년대 중반 이후 노동 운동의 하나로 신흥소비조합 운동이 활발하였다. 한신소비조합은 효고현 조선노동조합의 해소와 조합원의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가입이 계기가 되어 설립되었다.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에 가담하지 않은 재일 조선인들을 다수 가입하도록 하였다. 한신소비조합은 아마가사키시 쓰키지[築地]에 본부를 두고, 니시노미야, 나루오, 아시야, 아오키 등에 지부가 있었다. 아마가사키의 융화 단체인 내선동애회와는 대립하였다. 한신소비조합은 1941년까지 존속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신소비조합은 재일 조선인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고, 한국과 일본 노동자 간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한신소비조합의 규약은 11장 34조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주된 조항은 생활필수품 구입·생산 가공·기타 소비 경제의 이익 옹호를 목적[제2조]으로 하고, 조합원 자격자는 한신 간에 거주하는 노동자·농민·무산 시민[제3조, 제4조]으로 하며, 출자금은 1구좌 5엔[제18조]이며, 이익금의 일부는 구좌 금액에 따라 배당[제24조]한다는 것 등이었다. 한신소비조합의 전성기에는 450가구가 가입하였다. 일상적인 활동은 쌀, 된장, 간장, 명태, 고추 등을 시가보다 20~30% 싸게 파는 것이었다. 1934년 무로토[室戶] 태풍으로 인한 재해와 1936년 한반도 남부 수해 등에 대해 적극적인 구호 활동을 벌였다. 특히 무로토 태풍 때는 다치바나[立花]촌에 응급 주택 25호를 건설하였다. 재일 조선인 노동자와 일본 노동자 간의 연대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한신 지구 지부 활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또한 야간부 설치와 주택 문제 등의 대체에서도 민족적인 독자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한신소비조합은 『한쇼뉴스[阪消ニュース]』를 발행하거나 야간부를 마련해서 문자의 보급 활동 등도 펼쳤다.
한신소비조합은 재일 조선인의 일상생활에 입각하여 이익을 도모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재일 조선인의 소비조합 가운데 가장 오래 존속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좌익 소비조합 운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해체 이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에 조직되지 않았던 다수의 재일 조선인 노동자를 결집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