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조선유학생학우회

원어 항목명 京都朝鮮留学生学友会
한자 京都朝鮮留學生學友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교토부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4년
해체 시기/일시 1942년
개칭 시기/일시 1924년
원어 항목명 京都朝鮮留学生学友会
성격 유학생 친목단체
설립자 김우영
정의

1914년 일본 교토에서 설립된 재일 조선인 유학생 친목 단체.

개설

1914년 12월 교토제국대학[京都帝国大学]의 김우영(金雨英)[이후 나혜석의 남편]을 중심으로 교토 조선유학생친목회가 조직되었다. 도쿄의 조선유학생들학우회 등과 연락을 취하며 민족 의식과 항일 사상 고양에 기여하였다.

설립 목적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와의 원활한 교류와 교토 지역내 유학생의 친목 도모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924년 교토 조선유학생친목회에서 교토 조선유학생학우회로 개칭되었고, 일본의 감시와 탄압에도 유학생의 친목 단체에서 민족 운동단체로 변천해 갔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6년 6월 27일 기관지 『학조(學潮)』를 창간하였다. 『학조』에는 당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에서 공부하고 있던 정지용이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1927년 7월 제2호가 나온 것은 확인되었으나 그 후의 속간은 미상이다.

현황

교토에는 당시 교토제국대학[京都帝国大学],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리츠메이칸대학[立命館大学] 등 각각 대학별 유학생 단체가 존재했으며, 단체 중에는 노동 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에 관여하는 유학생도 많았다. 1936년 이후에는 일본 경찰에 의해 모임에서의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1938년에는 단체명에서 ‘유학생’을 지우도록 지시받았다. 이러한 일본의 간섭과 강요에 대하여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은 모임에서 조선 민요를 부르는 형식으로 저항하였다. 1940년 교토 조선유학생학우회 간부가 된 조영주(曺寧柱) 등은 동아연맹[1939년에 결성된 좌익적 국가 사회주의 단체]에서 활동하며 조선인 차별을 비판하는 문장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42년 봄, 교토 조선유학생학우회 간부들이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어 학우회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조선인 유학생의 신분으로 유학생들간의 친목을 내세운 단체이지만 이들 유학생들은 민족 의식 고취와 국권 회복을 위하여 결속하고 저항해 갔다.

참고문헌
  • 정세현, 『항일학생민족운동사연구』(일지사, 1975)
  • 『在日コリアン辭典』(明石書店,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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