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高麗共産靑年会日本部 |
---|---|
한자 | 高麗共産靑年會日本部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도쿄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7년 2월 |
---|---|
원어 항목명 | 高麗共産靑年会日本部 |
1927년 2월 일본 도쿄도에서 조직된 재일 조선인 공산주의 단체
일본 도쿄에서 일월회(一月會)를 조직한 안광천(安光泉)이 1926년 9월 재건된 제3차 조선 공산당[이른바 ML당]의 책임 비서가 되어[12월], 일본에서의 공산당 조직 재건에 주력하면서 처음으로 고려 공산청년회가 조직되었다.
1927년 2월 일본 도쿄도에서 박낙종(朴洛鍾)의 지도로 한림(韓林)을 책임 비서로 하여 도쿄를 동부, 서부, 북부로 나누어 조직하였다. 고려 공산청년회 일본부는 도쿄와 함께 교토[京都]에도 간사이국[關西局]을 마련하고, 교토와 오사카[大阪]에서 세포[공산당의 지부 조직]를 조직해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8월 조선 공산당 총검거 시 고려 공산청년회는 이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고, 1928년 국치 기념일 투쟁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과 함께 전개했다. 1929년 5월 메이데이 투쟁에 이은 제2차 탄압으로 간부 25명이 검거되어 세력이 약해졌다. 1929년 8월에는 교토에서 고려 공산청년회 일본총국 활동을 하던 간부들이 체포되었고, 그 후에도 일부 간부들이 조직의 명맥을 유지시켜 나갔다. 하지만 1931년 10월 일국 일당 원칙(一國一黨原則)을 내세운 일본 공산당의 압력으로 조선 공산당 일본총국과 함께 해체 성명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