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조선인단체협의회

원어 항목명 東京朝鮮人団体協議会
한자 東京朝鮮人團體協議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도쿄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7년 2월 19일
해체 시기/일시 1929년 말
원어 항목명 東京朝鮮人団体協議会
성격 독립운동단체
설립자 김상혁
정의

1927년 일본 도쿄에서 조직된 재일 조선인 민족 해방 운동 단체 연합 조직.

개설

도쿄 조선인단체협의회는 정우회 선언 이후 국내 및 일본에서 이루어진 통합 운동의 결과, 1927년 2월 19일 도쿄 조선청년동맹 사무소에서 학우회 위원장 김상혁의 제의로 결성됐다. 1920년대 재일 조선인 민족 해방 운동 단체들이 전개한 3·1 기념 투쟁, 국치일 투쟁,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회 등이 상설적인 연합 단체 결성의 토대가 됐다. 도쿄 조선인단체협의회는 형식과 실제 면에서 신간회보다 광범위한 조직이었으며 주의, 주장의 차이가 있더라도 조선인에 의한 조선 민족의 해방을 바라는 18개 단체가 결집한 것이었다.

변천

1927년 5월부터 도쿄, 오사카, 교토, 나고야 등지에 지회를 조직했으며 유학생이 주동적 역할을 했다. 1927년 말 참가 단체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도쿄 조선노동조합 등의 볼셰비키계 11개 단체, 흑풍회 등의 아나키즘계 6개 단체, 기타 민족주의계 단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 신간회의 도쿄지회 설립은 사실상 재일 조선인 단체의 공동 투쟁의 산물이었는데, 도쿄지회 주도 인물 중에는 도쿄 조선인단체협의회에 가입한 단체 구성원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나키즘계 단체는 신간회의 운동에 대립하면서 도쿄 조선인단체협의회를 탈퇴했다. 도쿄 조선인단체협의회의 활동은 연대, 공동 투쟁 중심이었고, 결성을 주도한 김상혁의 활동으로 볼 때 볼셰비키계가 주도했으며, 결국 조선 공산당 일본부와 일본총국의 지도하에 움직였다.

1927년 11월, 도쿄 조선인단체협의회는 『동아일보』가 독립운동, 특히 농민과 학생의 투쟁을 수수방관한다고 비판하고 『동아일보』 배척 운동을 전개했다. 조선총독폭압정치반대 간토 지방동맹[朝鮮總督暴壓政治反對關東地方同盟]의 제창에 따라 1928년 1월 27일 신간회 도쿄지회 회관에서 삼총해금 간토 동맹[三總解禁關東同盟]이 결성되자, 이에 가입해였다. 1928년 3월 1일에는 신간회 도쿄지회 회관에서 기념행사를 주최하고 전국에 격문을 살포했다. 1929년 6월 15일 신간회 도쿄지회 회관에서 도쿄 조선인단체협의회를 열고 ‘학우회 살상 사건에 대해 조사 위원 3명을 선거하고 재경 각 단체에 발표할 것, 학우회 운동회를 통해 모집한 기근 구제 기금을 속히 발송할 것, 기근 구제 강연회를 열고, 각 단체는 회원 총동원으로 구제 운동에 노력할 것’ 등을 결의했다. 그러나 1929년 말 주요 참가 단체들이 해체됨에 따라 도쿄 조선인단체협의회 역시 자연스럽게 해산되었다.

의의와 평가

재일 조선인 단체들의 연대 투쟁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에 전위 조직인 조선 공산당 일본총국의 지도 아래 대중 단체인 도쿄 조선인단체협의회에는 사회주의 조직뿐 아니라 아나키즘 단체도 포함된 것이 특징이었으며, 삼총해금동맹(三總解禁同盟)과 함께 단체 가입 형식으로 일상적인 연대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참고문헌
  • 김인덕, 『식민지 시대 재일 조선인 운동 연구』(국학자료원, 1996)
  • 김동명 외,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단체 편람』(민족문제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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