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조선노동동맹회

원어 항목명 東京朝鮮労働同盟会
한자 東京朝鮮勞動同盟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도쿄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2년
원어 항목명 東京朝鮮労働同盟会
성격 노동단체
정의

1922년 일본 도쿄도에서 결성된 재일 조선인 최초의 노동 운동 단체.

개설

도쿄 조선노동동맹회는 1920년대 초 일본 내에서 빈발하였던 조선인에 대한 학살과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이 조직하였다. 일본은 물론이고 조선 내의 노동 운동과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사를 표시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설립 목적

도쿄 조선노동동맹회는 조선 노동 운동을 국제적으로 진출시키고 세계 무산 계급의 절대 승리를 근본적인 목적으로 하였다. 하지만 재일 조선인 노동자 계급의 계급 의식 촉진과 직업 안정을 도모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하였다.

변천

1922년 여름 니가타현[新瀉縣] 신에쓰[信越] 전력발전소의 시나노가와[信濃川] 공사 현장에서 가혹한 노동으로 인해 도망한 조선인 노동자 수십 명을 권총으로 사살하고 강물에 버린 조선인노동자학살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선인노동자학살사건의 진상 조사를 목적으로 손영극(孫永極), 김종범(金鍾範) 등이 재일본조선인노동자상황조사회를 조직하였다. 1922년 11월 재일본조선인노동자상황조사회가 발전하여 도쿄 조선노동동맹회가 조직되었다. 류진걸(柳震杰), 손봉원(孫奉元), 김상호(金相鎬), 마명(馬鳴), 김천해(金天海) 등을 실행 위원으로 선출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인노동자학살사건을 계기로 조직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도쿄 조선노동동맹회는 일제의 조선인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투쟁하였다. 1923년 12월 관동 대지진 때 발생한 조선인 학살에 대하여 항의하는 재도쿄조선인대회를 주최하고 조선인박해사실조사회를 구성하였다. 1924년 기관지 『노동동맹(勞動同盟)』제2호 사설에서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 식민 통치에 대한 울분을 강하게 표출하였고, 4월 관동 대지진 피일지선(被日支鮮) 노동자대회를 주도하는 등 재일 조선인에 대한 탄압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국제적인 연대 활동도 전개하였다. 1923년 과격사회운동취체법, 노동조합법, 소작쟁의조정법의 3법, 즉 3악법반대전국노동조합전국동맹에 가입하여 일본의 노동 단체, 사회 단체와 협력하여 일본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였다. 1923년 조선의 경성고무공장의 여성 노동자 파업 투쟁을 일본노동총동맹관동노동조합이 주최한 대회에 참석하여 보고하고, 지원을 호소하였다. 1924년 한해, 수해, 병충해까지 겹친 대기근이 조선에서 발생하자 조선의 기근을 구제하기 위하여 조선유학생학우회, 형설회 등 13개 단체와 연합하여 조선기구구제회를 발기하였다. 1925년 민족 개량주의를 표방한 이광수의 「민족적 경륜」이 『동아일보』에 게재되자 학우회, 조선 여자학흥회, 조선교육연구회 등과 함께 동아일보배척운동을 전개하였고, 1925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에 참여하였다. 1924년 5월 일본 노동 단체가 주최한 메이데이 행사에 회원 20명이 조선 대표로 정식 참가하는 등 메이데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일본 내에서 조직된 최초의 노동 운동 단체로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조선인 차별과 학살에 대한 항의와 조사 활동의 전개, 일본의 당면한 현실 문제를 개혁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 활동 참여, 조선 내의 노동 운동 단체·사회 운동 단체와의 연대 활동, 민족 개량주의에 대한 투쟁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회 혁명과 민족 혁명 운동에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 김인덕, 『식민지 시대 재일 조선인 운동 연구』(국학자료원, 1996)
  • 김동명 외,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 단체 편람』(민족문제연구소, 2010)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総領事館警察部第二課, 東文社書店,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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