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東京無産者靑年同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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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京無産者靑年同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도쿄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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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28년 4월 8일 |
개칭 시기/일시 | 1926년 11월 |
원어 항목명 | 東京無産者靑年同盟 |
1925년 일본 도쿄도에서 결성된 재일 조선인 운동 단체.
도쿄 무산자청년동맹[東京無産者靑年同盟]은 1925년 조직되어 1928년 재일본조선청년동맹 도쿄지부로 재조직될 때까지 사회주의적인 입장에서 도쿄 지역의 재일 조선인 청년 운동을 이끌었다. 일월회 등과 연합하여 단일 운동 전선을 창출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무산 청년의 계급 의식을 강화하여 혁명 투사를 양성하고, 무산 청년의 계급적 대동단결을 꾀하며, 이상적 신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었다.
1925년 1월 재일본조선무산청년회와 도쿄 조선무산청년동맹을 통합하는 형식으로 결성되었고, 1926년 11월 도쿄 조선청년동맹으로 개칭하였다. 백무(白武), 이헌(李憲), 박천(朴泉) 등 8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였다. 1925년 4월 경성에서 개최된 조선민중대회에 유진걸을 파견하였으나 이후 조선 내에서 사회주의 분파 활동이 강화되자 도쿄 무산자청년동맹 내에서도 화요회파와 반화요회파로 나뉘어 분파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1925년 관동 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에 대한 연합 추도회에 참가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백무, 이여성(李如星), 안광천(安光泉) 등 17명이 1925년 11월 1일과 11월 19일 임시총회를 열어 이러한 활동 부진 상황을 비판하며 조직을 재편하고, 삼월회, 일월회,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과의 공동 투쟁의 건, 조선 무산 계급 운동을 교란시키는 북풍회에 대해 앞의 3단체와 함께 성명서를 발표하여 성토할 것, 김삼봉을 제명 처리할 것 등을 결정하였다. 1926년 11월에는 더욱 광범위하게 청년을 규합하고 공동 전선을 추진하고자 단체명에서 ‘무산’을 없애고 도쿄 조선청년동맹으로 개칭하고 조선청년총동맹에 가입하였다. 1927년 2월 25개 단체로 조직된 도쿄 조선인단체협의회에 가입하였으며, 1928년 2월 재일본조선청년동맹이 결성되자 4월 8일 대회를 개최하여 조직을 해체하고 재일본조선청년동맹 도쿄지부로 재조직되었다.
1925년 11월 도쿄 무산자청년동맹 등 4단체는 북풍회의 활동을 파벌 투쟁이라 규정하고 이를 비판하였으며, 회원 김삼봉이 북풍회의 지시에 따라 신성회를 조직하고 이들 4단체의 활동에 배치되는 파벌 행위를 하였다는 명목으로 제명하였다. 이는 단일 운동 전선을 표방하자는 이들 4단체의 의지 표현이었다. 1926년 1월에는 기관지 『청년조선(靑年朝鮮)』을 창간하였다. 1926년 1월 17일 임시 총회를 개최하여 조직을 재편하고, 4월 2일 총회를 개최하여 운동의 통일과 청년 단체의 제휴 등을 협의하였고, 6월의 정기 총회에서는 반동분자 박멸책을 결의하였다.
1926년 11월 도쿄 조선청년동맹으로의 개칭 이후 기관지 『청년조선』을 속간하는 한편 전국적 청년 신문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1927년 2월에는 조선총독폭압정치반대투쟁, 3·1운동기념투쟁을 전개하였고, 12월 31일에는 연설회를 개최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탄압으로 중지되었다. 1928년 1월에는 조선유학생학우회, 천도교청년당, 기독교청년회, 조선 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도쿄지부, 신흥과학연구회, 재도쿄조선여자청년동맹 등과 재도쿄조선청년단체위원 공동간담회를 개최하였다. 또 1월 16일부터 20일까지 ‘라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 기념 반일본 군국주의 주간’으로 설정하는 한편 1월 29일 인도, 베트남, 중국, 대만, 일본, 조선 등의 청년합동간친회를 개최하여 반제국주의 투쟁을 전개하였다.
도쿄 무산자청년동맹은 도쿄를 중심으로 한 청년 운동 단체로서 일월회와 함께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의 분파 활동에 대해 비판하고 단일 운동 전선을 주장하였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도쿄 중심 청년 운동의 통일과 아시아의 피압박 민족 청년 운동의 협력을 위한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반제국주의 연대 투쟁을 도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