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槿友会京都支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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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槿友會京都支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교토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8년 2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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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일본 교토부 |
원어 항목명 | 槿友会京都支会 |
1928년에 창립된 여성계 민족 운동 단체인 근우회의 교토지회.
1928년 2월 12일 근우회(槿友會) 교토 지회가 창립되었다. 이후 활동 내용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근우회 중앙 본부의 창립 취지는 “과거의 여성 운동은 분산적이었으므로 통일된 조직도 없고, 통일된 목표나 지도 정신도 없어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므로, 여성 전체의 역량을 견고히 단결하여 새로운 여성 운동을 전개하려는 것”이었다. 강령은 여성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 향상이었다. 운동 목표로는 봉건적 굴레에서 벗어나는 여성 자신의 해방과 일제 침략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양대 방향이 제시되었다. 그러므로 근우회 교토지회도 이러한 근우회 본부의 창립 취지와 강령에 따랐을 것이다.
교토 지역에 산재한 조선 여성들을 근간으로 근우회 교토지회의 설립에 노력하여 1928년 2월 12일 수평사 청년 회관에서 100여명의 방청객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임시 의장 김복희의 사회로 개회된 이후 각지에서 온 20여 통의 축문과 축전, 우의 단체 대표의 축사가 있었다. 이후 임원 선거 결과 회장 김복희(金福熙), 부회장 김명순(金明順), 서무부 총무 황인경(黃仁京), 간사 박기열(朴基烈), 박정숙(朴貞淑), 조직 선전부 총무 표경조(表景祚), 간사 최경진(崔景珍), 김옥례(金玉禮), 진인업(陳仁業), 조사 정보부 총무 김복희, 간사 김성철(金聖哲), 안이숙(安利淑), 교육부 총무 문남식(文南植), 간사 김동옥(金東玉), 이찬실(李燦實), 출판부 총무 한유순(韓有順), 간사 김윤숙(金潤淑), 재정부 총무 고봉경(高鳳京), 간사 유수혜(柳誰惠)가 선출되었다. 그리고 노동 부인에 관한 건, 인신매매에 관한 건, 교육 방침에 관한 건, 신간회 지지에 관한 건, 관서 부인 동맹 지지에 관한 건, 회유지에 관한 건, 재만 동포 국축 반대에 관한 건 등을 결정하였다. 근우회 교토지회의 조직 변천에 대해서는, 1928년 7월 경성에서 개최된 근우회 임시 총회에는 김동옥, 김복희, 최흥진이 출석하였으며 김복희는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로 보아 김복희, 김동옥, 최흥진 등이 이 단체의 핵심 구성원으로 활동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1928년 12월 24일 쇼케이마루[昌慶丸]로 부산항에 입항하였던 근우회 교토지회 서무부 간사 황인경과 지회원으로서 도시샤 대학에 재학 중인 류모(柳某)가 동기 방학을 이용하여 귀국하는 도중 현지의 사상 단체로부터 모종의 사명을 받아 귀국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혐의가 없어 석방되기도 하였다. 1929년 회원 수는 101명으로 보고되었으나 활동 내용을 확인할 자료가 부족하여 구체적 활동상을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근우회가 신간회의 자매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신간회 교토 지회와 연대 활동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교토 지역 재일 조선인 여성 운동의 민족 단일 운동 단체로 창립되었다. 김복희가 1928년 근우회의 집행 위원으로 선출된 것으로 보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활동을 확인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