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極東労働組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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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極東勞動組合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9년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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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極東労働組合 |
성격 | 노동단체 |
1929년 일본에서 조선 자유노동자조합과 조선 동흥노동동맹의 회원들이 연대, 규합해 조직한 항일·반공적 노동 운동 단체.
극동노동조합은 조선 자유노동자조합과 동흥노동동맹의 회원들이 연대하여 1929년 결성한 아나키즘에 입각한 재일 노동 운동 단체이다. 메이데이 투쟁, 만보산사건 진상 규명 투쟁, 책자와 선전물의 발간을 통한 선전 활동, 독립운동자에 대한 지원 활동, 반공산주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극동노동조합은 자유연합주의를 표방하며 정치 운동 배격과 경제적 직접 행동을 주장하였다. 나아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정책 배격과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을 강조하였다.
도쿄 조선 자유노동자조합의 오우영 등이 공산 진영의 세력 확장에 대응하기 위하여 동흥노동동맹의 진철배 등을 규합하여 1929년 12월 30일 25명의 회원으로 극동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1933년 오우영과 이윤회가 아나키스트 단체의 통일을 제창하며 활동하면서 극동노동조합의 활동은 중지된 것으로 보인다.
극동노동조합의 활동은 크게 메이데이 투쟁, 만보산사건 진상 규명 투쟁, 책자와 선전물 발간을 통한 선전 활동, 독립운동자에 대한 지원 활동, 반공산주의 활동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메이데이 투쟁으로는 1930년과 1931년 메이데이를 맞아 전단을 살포하여 오우영 등이 검거되었고, 강동교등록노동자공조회 분회 사무소와 강동 각 방면에 있던 공산주의자들을 습격하였다. 또한 1933년 7월 조선 자유노동자조합과 함께 볼셰비키 계열의 공산주의자들과의 투쟁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20세기』와 여러 책자를 발간하였다.
1931년 7월 2일 중국 길림성 장춘현의 만보산 지역에서 이른바 만보산사건이 발생하자 극동노동조합은 흑우연맹, 조선 동흥노동동맹, 조선 자유노동자조합, 흑기노동자연맹 등 여러 노동 단체와 공동 인쇄물을 발행하여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였다. 뿐만 아니라 7월 14일 만보산사건 진상 비판 연설회를 개최하여 일본의 중국에 대한 침략을 규탄하였다. 1933년 3월 상해에서 원심창, 백정기, 이강훈 등이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에 대한 의열 투쟁의 결과 체포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자 적극적으로 지원 활동을 추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