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학회

원어 항목명 大韓学会
한자 大韓學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도쿄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8년 1월
해체 시기/일시 1909년 1월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8년 3월
원어 항목명 大韓学会
성격 재일 조선인 유학생 단체
정의

1908년 일본 도쿄에서 설립된 재일 조선인 유학생 연합 단체.

개설

대한학회는 일본 도쿄도의 조선인 유학생을 대표하는 단체로 “국민의 지덕 계발”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지식을 조선에 보급하고자 1908년 3월 기관지 『대한학회월보』를 창간하고 11월까지 총 9호를 발행하였다. 『대한학회월보』의 주요 내용은 국민 계몽과 교육 문제였다. 재정은 회비[매월 5전]와 기부금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조선의 기호흥학회와 긴밀히 연계하면서 안창호, 박은식 등의 유지 및 대한학회 후원 조직 찬성회(贊成會)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설립 목적

대한학회는 국민의 지덕 계발을 목적으로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재일 조선인 유학생 단체는 1908년 1월 통합을 위한 연합위원회를 열었다. 연합위원회에서 통합에 합의한 유학생들은 통합 단체 발족을 위한 준비 작업을 거쳐 1908년 2월 9일 170명이 모인 가운데 대한학회 창립 총회를 열었다. 대한유학생회, 낙동친목회, 호남학회, 광무학회의 4개 단체는 발전적 해소를 도모하여 대한학회로 통합하였다. 그러나 최대 조직이었던 태극학회는 참여를 약속하였지만 내부의 이견 제의로 인해 독립 단체로 남았고 공수학회 또한 통합 과정에서 이탈하여 결국은 부분적 통합에 머무르고 말았다.

대한학회 창립 당시 임원으로는 회장 최린(崔麟), 부회장 이은우(李恩雨), 총무원 강기우(姜麒祐), 최석하, 김기환(金淇驩), 윤익현(尹翼鉉), 유승흠, 윤대진(尹台鎭), 문상우(文尚宇), 정세윤(鄭世胤), 박병철(朴炳喆), 임규(林圭), 박용희(朴容喜), 한상우(韓相愚), 김진용(金晋庸), 최창조(崔昌祚), 최남선(崔南善), 윤정하(尹定夏), 강전(姜荃), 홍순오(洪淳五), 최원기(崔元基), 이한경(李漢卿), 편집부장 김기린, 교육부장 최석하, 토론부장 채기두(蔡箕斗), 운동부장 어윤빈(漁允斌), 교제부장 고의환(高宜煥)이었다. 1908년 6월 임원 개선으로 회장 이은우, 부회장 채기두, 총무원 유승흠, 김기린, 평의원 문상우, 허헌(許憲), 최린, 한상우, 윤대진, 박병철, 강전, 이한경, 김창수(金昌洙), 윤정하, 이승근(李承瑾), 이창조, 홍순오, 강기우, 김하구(金河球), 고원훈(高元勳), 윤익현, 김국태(金局泰), 조봉구(趙鳳九), 김기경(金基敬)으로 바뀌었다. 재일 조선인 유학생의 완전한 통합 조직은 아니었지만, 도쿄의 조선인 유학생을 대표하는 단체였다. 1909년 1월 다른 단체와 함께 유학생 통합 단체인 대한흥학회를 설립하면서 해산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한학회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대한제국 시기 일본 도쿄의 재일 조선인 유학생을 대표하는 통합 단체였다.

참고문헌
  • 김기주, 『한말 재일 한국 유학생의 민족 운동』(느티나무, 1993)
  • 정태주, 「대한흥학회의 성립과 활동」(단국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96)
  • 표영수, 「대한제국 말기 재일본 유학생의 애국 계몽 사상」(『숭실사학』11, 숭실대학교사학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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