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공산당 일본총국

원어 항목명 朝鮮共産党日本総局
한자 朝鮮共産黨日本總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8년 4월
해체 시기/일시 1931년 10월
원어 항목명 朝鮮共産党日本総局
성격 공산주의 항일 단체
설립자 조선 공산당
정의

1928년 4월 재건한 조선 공산당의 일본지부 조직.

개설

재외 조직으로서 일본부 설치는 1925년 4월의 조선 공산당 및 고려청년공산당의 창설 때부터 모색되었으나, 잇따른 탄압 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1926년 12월 이른바 제3차 공산당[ML당]이 재도쿄 일월회[在東京一月會] 회원이었던 안광천(安光泉)을 책임 비서로 하여 재건되었다. 이에 안광천은 일월회 회원을 주체로 조선 공산당 일본부 설치를 지시하여 박낙종, 최익한, 김한경, 한림 등이 일본부를 설치했다.

이와 동시에 고려 공산청년회 일본부도 한림을 책임 비서로 하여 조직되었다. 고려 공산청년회 일본부도 탄압으로 인해 책임 비서였던 박낙종 등 주요 간부가 검거되자, 검거를 모면한 한림 등이 조선 공산당 일본총국을 재건했다. 2개월 후에는 역시 탄압으로 한림 등이 검거되자 책임 비서는 김천해(金天海)가 이어받았다.

설립 목적

조선 공산당 일본총국은 모조직인 조선 공산당과 같이 공산주의 방식의 항일 독립 투쟁을 목적으로 하였다.

변천

조선 공산당 재외 조직 중 하나로 조선 공산당 일본부[1927년 5월 설치]가 1928년 2월 공산당 탄압으로 사실상 해체된 후에 그 명칭을 조선 공산당 일본총국으로 바꿔서 1928년 4월 재건한 조선 공산당의 일본지부 조직이다.

조선 공산당의 재외 조직은 만주와 일본 두 곳에 있었는데, 만주총국은 1926년 5월에 조봉암 등에 의해 조직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 공산당 일본총국은 도쿄 지구를 중심으로 세포 조직 확대와 대중 단체 프락션 활동을 전개했다. 1928년 8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등 대중 조직을 동원해서 국치 기념일 투쟁을 펼치다가 김천해 이하 주요 간부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기소당했다. 이후에도 체포를 모면한 간부들로 조직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모조직인 조선 공산당이 관헌의 탄압과 내부의 계파 투쟁으로 1928년 12월 코민테른에 의해 지부 승인이 취소된 데다가, ‘일국 일당 원칙’의 입장에 있었던 일본 공산당의 압력으로 인해 1931년 10월 고려 공산청년회 일본지부와 함께 해체 성명을 발표했다. 해체 이후 재일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의의와 평가

조선 공산당 재외 조직으로서 재일본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을 결속시켰으며, 재일 조선인 민족 해방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 김학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민음사, 2005)
  •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2(역사비평사, 2009)
  • 전준, 『조총련 연구』(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2010)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