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在日本朝鮮労働総同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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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在日本朝鮮勞動總同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5년 2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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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29년 12월 |
원어 항목명 | 在日本朝鮮労働総同盟 |
1925년 결성된 재일 조선인 노동자의 전국적 조직.
초기의 재일 조선인 노동 단체는 상호부조와 친목을 목적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종료 후에는 일본의 공업 발달과 더불어 노동자 인권에 대한 자각도 높아졌다. 1922년 시나노가와 수력발전소 현장에서 발생한 재일 조선인 학대·학살 사건 항의 운동을 계기로 모인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각지에서 노동 동맹회를 결성했다. 각 노동 단체는 조선인 노동자의 권익을 강화하고, 생존권 확립에 앞장서고자 하였다. 1924년 조선에서 조선노농총동맹이 결성되자 일본 내 지역별 조선인 노동 단체도 통일의 필요성이 요구되어 전국 단체로 결집하게 되었다. 결성 초기 800여 명이었던 맹원은 1927년 30,000명 이상의 대규모로 확대되었다.
1925년 2월 22일, 도쿄에서 개최된 결성 회에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은 “1.우리는 단결의 위력과 상호부조의 조직으로 경제적 평등과 지식의 계발을 기한다. 2. 우리는 단호한 용기와 유효한 전술로 자본가 계급의 억압과 박해에 대해 철저히 항쟁할 것을 기한다. 3. 우리는 노동자 급과 자본가 급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노동조합의 실력으로 노동자 급의 완전한 해방과 자유 등의 신사회 건설을 기한다.” 등의 강령을 채택하였다. 또한 “8시간 노동 및 1주간 48시간제의 실시, 최저 임금의 설정, 악법의 철폐, 메이데이의 일치적 휴업, 경제적 행동의 일치적 협력”을 주장으로 채택하였다.
기관지로 월간 『조선노동』을, 노동자 계몽을 위한 『노동독본』을 발간하였다. 투쟁의 주요 쟁점은 경제 문제였지만 반제 반일·계급 타파·계몽 운동 등이 복합적으로 결부되었다. 그러나 국제 적색노조[프로핀테른]이 1928년에 정한 자본주의제국에 거주하는 식민지 출신 노동자는 거주국의 혁명적 노동단체에 가맹하라는 방침에 따라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은 해산하고 일본의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로 해소되는 과정을 밟아야 했다. 1929년 12월 해산이 결정되었지만 전격적인 해산은 이루어지지 않고, 1930년 이후 지역별로 점진적인 해산이 진행되었다.
지역별로 존재하던 조합을 통합하고, 문맹률이 높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계몽 교육을 실시했다. 일본 무산 계급과의 연대, 반제 반일 운동, 일본과 조선의 사회운동 지원, 관동 대지진 진상 규명 및 조선인 탄압 규탄 운동 등을 펼쳤다. 또한 실질적인 투쟁으로는 3·1 운동 기념 투쟁, 메이데이 투쟁, 관동 지진 재조선인 학살 추도회, 국치일 기념 투쟁, 조선 총독 폭압 정치 반대 투쟁, 상애회 박멸 운동 등을 들 수 있다.
1928년 적색 노동조합 인터내셔널 제4회 대회에서 자본주의 제국의 식민지 노동자는 거주국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이 결의되어 일본의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로 흡수되었고, 조선인만의 노동 단체는 실질적으로 해체되었다.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은 조선인 노동 단체 중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대중적인 조직 기반을 가진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노동 단체인 까닭에 경제적 요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실질적인 투쟁 내용은 반제 반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 1920년대 중반 재일 조선인 운동의 구심적인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