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항

원어 항목명 渡港
한자 渡港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渡港
정의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이 구직과 학업, 혹은 강제 연행 등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행위.

개설

조선에서 일본으로의 도항은 개항 이후부터 학생, 상인, 승려, 해녀, 어부 등 특수 목적을 가진 소수의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1905년 일본의 산요기선에 의해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부관 연락선이 개설되고, 한일 병탄을 계기로 도항 인구가 증가하였다. 조선인들의 도항은 크게 자발적 요인으로 학업과 구직 활동 등이 있고, 비자발적 요인으로는 일제 말기 「국가총동원법」에 의한 강제 연행으로 나눌 수 있다. 조선인의 해외 유출은 1910년대와 1920년대의 일제에 의한 토지 조사 사업과 산미 증식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전통적 농업 환경의 일대 전환으로 인해 생산 수단을 박탈 당한 농민 계층은 중국·노령·일본 등으로 생활의 근거를 옮겼다. 자발적 도항자들 중에는 한국보다 나은 교육을 받고자 하는 유학생, 일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은 이들도 있었다. 비자발적 도항자들은 1937년 중일 전쟁과 1941년 아시아·태평양 전쟁 이후 전면적인 총동원령에 의해 강제 연행된 사람들이 압도적 다수를 이룬다.

도항 시기 구분

일본으로의 도항은 크게 3기로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1910~1921년까지의 제1기는 강제 병탄 전후 생활 근거지를 박탈당한 조선인들이 경제 호황을 누리던 일본으로 노동 이민을 한 경우에 해당한다.

1922~1938년의 제2기는 본격적으로 도항 인구가 증가한 시기다. 제1기 10년간 4만여 명이 도항한 것에 비해 제2기에는 75만여 명이 도항해 재일 조선인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고, 노동 단체를 비롯한 이익 단체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제1기와 제2기가 기본적으로 노동 이민이었던 것에 비해 1939~1945년의 제3기는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해 조선인을 강제 연행한 경우였다. 단기간 내에 대량 인원이 동원되어 이 시기에는 110만여 명이 도항하였다. 일본의 패전 무렵, 재일 한인 인구는 200여 만 명 정도로 해방 이후 이들은 대거 귀국하였다.

한편 귀국하지 않은 채 일본에 체류한 인원도 60여 만 명에 달한다. 체류의 요인은 귀국시 재산 반출의 제한이 있었고, 한반도의 정치·경제가 불안정하였으므로 상황이 호전되면 귀국하려 하였으나 남북 분단과 전쟁의 발발로 인해 영원히 귀국하지 못한 채 정주하는 경우와 결혼, 학업의 연장 등이 있었다.

참고문헌
  • 강재언, 『재일 한인의 갈등과 도전』(고성중 옮김, 북제주문화원, 2005)
  • 정혜경, 『조선인 강제 연행 강제 노동』1-일본편(선인, 2006)
  • 김찬정, 『재일 한국인 백년사』(박성태·서태순 옮김, 제이앤씨, 2010)
  • 『주권의 야만: 밀항, 수용소, 재일 조선인』(한울아카데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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