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京都西陣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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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京都西陣織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원어 항목명 | 京都西陣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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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이 주로 종사한 산업으로 일본 교토시 니시진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통 고급 직물.
교토 니시진오리는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 일본 교토부에서 재일 조선인이 종사한 대표적 직업 분야의 하나이다. 재일 조선인은 강제 합병 전후부터 교토에서 니시진오리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니시진 지역에는 재일 조선인의 집중 거주 지역이 형성되어 갔다. 1910년대 후반부터 1920년대에 걸쳐 니시진오리는 대중화와 기술 고도화가 진행되었다. 특히 니시진오리의 생산이 확대된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 교토에 들어온 조선인들이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값싼 임금으로 니시진오리, 유젠조메[友禪染] 등 전통 섬유 산업에서 많이 일하였다. 1933년 니시진 지역을 포함한 교토시 가미교구[上京區]에서 니시진오리 산업에 ‘용인(傭人)’으로 종사한 587명 중 조선인은 126명으로 20% 이상을 차지하였으며, 세대주 4,937명 중 조선인은 49명으로 약 1%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고급품을 생산하는 니시진오리는 휴업할 수밖에 없어 일본의 패전 당시에는 소수의 제조업자가 근근히 생산을 유지하는 상황이었다. 해방 후 1950년대 후반부터의 일본 고도 경제 성장 시기에 니시진오리 산업이 부활하면서 오랫동안 수련을 통해 기술을 습득한 재일 조선인 직공 중에서 독립해 기업을 설립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후 니시진오리 산업은 고도 성장기 교토의 재일 한인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산업이 되었고, 일본 전통 산업의 계승, 발전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인의 복장 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기모노[着物]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생산량이 1980년대 전반을 절정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1991년 버블 경기가 붕괴되면서 니시진오리 산업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그 때문에 비교적 규모가 큰 재일 한인 기업은 니시진오리 산업에서 철수해 파친코 산업 등으로 전환한 경우가 많았고, 영세한 경영자나 노동자는 니시진오리 산업에 계속 종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