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君が代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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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도구 제작|사용 시기/일시 | 1922년~194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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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君が代丸 |
성격 | 선박 |
1922년부터 1945년까지 제주도와 일본의 오사카부를 오가던 연락선.
1923년경 일본의 아마가사키 기선부는 제주도와 오사카를 연결하는 정기 항로를 개설하여 기미가요마루호를 운항하였다. 초기 취항선이 1925년 태풍으로 인해 좌초되자 1925년 소련에서 구입한 배를 개수하여 1926년 제2 기미가요마루호를 취항하였다. 제주-오사카 항로는 매우 인기가 높은 항로여서 1920~1930년대 반관반민의 조선우선이 취항하였고, 재일 조선인이 조직하였던 기업동맹기선부, 이를 이어받은 가고시마 우선이 각기 경쟁을 벌였다. 또한 기미가요마루호의 높은 운임 때문에 재일 제주 조선인들이 1만여 명의 조합원을 모아 동아통항조합을 결성한 후 1930년 복목환을 운항하기도 하였다. 복목환은 기미가요마루호보다 절반 가격을 받았지만 기미가요마루호가 다시 복목환의 절반 가격을 책정하였다. 자본이 충분하지 못하였던 동아통항조합의 복목환은 좌초 사고까지 겪으면서 결국 3년 만에 운항을 중단하게 되었다.
기미가요마루호는 경쟁 속에서 살아 남아 1945년 공습으로 인해 침몰할 때까지 제주도와 오사카를 운항하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부관연락선의 승객 과반수가 일본인이었던 것과 달리 기미가요마루호는 제주도에 연고를 둔 조선인들이 주요 승객이었다. 1924~1936년 사이 왕복한 인원은 3만 명을 웃돌았다. 1930년대 제주도 인구 중 5분의 1이 일본에 거주할 정도로 제주도는 일본과 깊은 관련을 맺었고, 제주도 경제는 일본을 왕래하는 제주도 출신자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재일 조선인 최대 집주 지구인 일본의 오사카에서 제주인의 비중이 타 지역에 비해 높은 것은 기미가요마루호의 직항으로 인한 영향이 컸고, 그러한 경향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에도 오사카 이쿠노구의 코리아타운에서는 제주도 특유의 식재료와 음식을 판매하는 점포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