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萬景峰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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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萬景峰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도구 제작|사용 시기/일시 | 197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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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2년 |
생산|제작처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원산시 |
원어 항목명 | 萬景峰号 |
성격 | 선박 |
용도 | 화객선 |
1971년부터 북한 함경남도 원산시와 일본의 니가타현 사이를 오간 부정기 화객선.
만경봉호는 일본의 니가타[新潟]현과 함경남도 원산시를 잇는 부정기 화객선으로, 1971년 5월 초대 만경봉(萬景峰)이 취항하여 8월 니가타에 입항하였다. 1975년 10월까지 재일 조선인의 귀국 목적으로는 16회, 귀국자의 화물 운송 목적으로는 12회, 무역 목적으로 33회 등 총 61회를 운항하였다. 만경봉호는 북한의 해운 회사 조선대진선박 소유이며, 함경북도 청진시에 선적을 두고 있다. 만경봉호라는 이름은 김일성 유적지인 평양시 서부 만경대산 봉우리들 가운데 가장 경치가 좋다는 만경봉(萬景峰)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만경봉호는 197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건조한 페리선으로, 북한의 원산과 일본 니가타(新潟)항 사이를 오가며 북송 교포 및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대표단과 화물을 운송하는 북한의 화객선 중 대표적인 선박이다. 재일 조선인 북송의 대명사가 된 선박이며, 북송사업이 중단된 1984년 이후부터 화물선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객 수송 분야에서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창구가 되어 재일 조선인의 조국 방문[친족 방문 등]이나 친척에 보내는 물자의 수송, 조선 학교의 수학여행 등을 취급한다. 일본의 북일 우호 단체나 개인이 전세를 내서 북한을 방문한 경우도 있다. 1971년 5월 초대 만경봉이 취항하여 8월 18일 니가타에 입항한 이래 1975년 10월까지 재일 한인의 귀국선으로 16회, 귀국자의 화물선으로 12회, 무역선으로 33회, 총 61회의 운항이 이루어졌다. 니가타 외에도 나고야[名古屋], 오사카[大阪], 고베[神戶]에 입항한 적이 있다.
현재 만경봉호의 정식 이름은 만경봉 92로 2대째에 해당한다. 만경봉호는 1992년 4월 김일성 주석 80회 생일을 맞아 재일본조선인총연합계 상공인들이 40억엔을 모아 만들었다. 배 이름의 92는 진수한 연도를 나타낸다. 1992년 4월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진수하여 6월부터 임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이유로 일본 정부는 6개월 간 일본 입항 금지 조치[특정 선박의 입항 금지에 관한 특별조치법]를 내렸다. 10월 북한의 지하 핵 실험 성공 발표에 따라 10월 14일자로 입항 금지 대상이 북한의 모든 선박으로 확대되었으며, 이후 몇 번에 걸쳐 기한이 연장되고 있다. 2011년 나진에서 고성[장전] 금강산 지구간 항로에 투입되는 여객선으로 활용되었다. 2014년 보도에 따르면 만경봉 92는 나진항 2번 부두에 정박된 채 녹슬어 가고 있다고 한다.
만경봉호는 80여 명의 승무원과 300여 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다. 총 3,500톤 규모로, 길이 102m, 폭 14m에 최대 속도 13.5노트이다. 만경봉 92는 9700톤급 선박으로 최대 속도는 23노트이다. 전체 길이는 162.1m, 전체 폭은 20.5m, 총 톤수는 9,672톤, 최대 속력은 23노트이며 350명을 태울 수 있다. 여객 화물 겸용인 만경봉 92는 위성항법장치[GPS], 음파 및 전파탐지기, 자동조타기 등을 갖추고 있으며, 파도가 높게 일면 선체 중간에서 날개가 자동으로 펼쳐져 중심을 잡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배 중간에는 승용차 적재용 대형 공간이 있으며 영화관·목욕탕·오락실은 물론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2002년 아시안게임 때 북한 응원단을 태운 만경봉호가 부산의 다대포항에 입항하였다. 만경봉호의 입항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1585번지 일원에 통일아시아드 공원이 2008년 12월 7일 준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