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定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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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定住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定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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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인이 일본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과정.
1910년대부터 일본으로 도항하기 시작한 조선인들은 생존 유지와 삶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점진적으로 집단 거주 공간을 형성하며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생존 유지라는 초창기의 모습에서 점진적으로 시대와 공간의 수요에 부합한 조선인 밀집 지역은 조선인촌에서 코리아타운으로 변모하여 왔다.
1920년을 기점으로 재일 조선인은 집단 거주를 시작하였고, 집단 거주지로서 최초의 조선인촌이 형성된 곳은 시모노세키와 모지였다. 조선인의 정주 공간은 일본인이 거주하지 않는 더러운 곳이었으나 사고나 질병으로 어려움을 처할 때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또한 여비를 마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즉, 조선인촌은 단순히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미가 있었던 것 뿐만 아니라, 상부상조가 가능한 생활 환경을 갖춘 곳이었다. 또한 조선인촌은 조선인의 민족성과 문화적 고유성을 가진 집거 지역으로 조선인의 문화가 응집된 공간이었다. 1920년대부터 형성된 대표적인 조선인촌은 큐슈 지역의 후쿠오카현[福岡県], 나가사키현[長崎県], 주고쿠지방[中国地方]의 야마구치현[山口県], 오카야마현[岡山県], 히로시마현[広島県], 긴키[近畿] 지방의 효고현[兵庫県], 오사카부[大阪府], 교토부[京都府], 간토[関東] 지방의 도쿄도[東京都] 등이었다. 이어서 쥬부[中部] 지역의 아이치현[愛知県], 기후현[岐阜県], 간토의 가나가와현[神奈川県] 등으로 확대되었고, 1935년경에 이르면 오사카, 도쿄, 나고야를 중심으로 조선인이 많이 거주하였다.
조선인촌의 형태는 정비가 되지 않은 저지대나 습지대, 노후 주택지 등 당시 일본인이 거주하기 꺼리던 지역에 형성된 불량 주택지, 도시 주변부지에 무허가로 임시 가건물[판잣집]을 만들어 살면서 형성된 빈터 점거·무단 차용형, 전답 지대 등 강 주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연 발생형, 행정 기관에 의해 계획적으로 특정 지역에 강제적으로 형성된 도시 설계형 조선인촌으로 구분된다. 전전에 형성된 조선인촌은 불량 주택지 유입형과 빈터 점거·무단 차용형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1920년대가 재일 조선인 생활 공간이 형성된 시기라면 1930년대는 재일 조선인 생활 공간이 확대된 시기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생활이 장기화 됨에 따라 조선인 식재료와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물론 관혼상제에 필요한 물품까지 구비한 조선 시장이 출현하였다.
1945년 일본의 패전과 전후 복구의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조선인촌도 차츰 해체되어 갔다. 광역 도시 내에서의 밀집 거주 지역은 점차 분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일본 사회에 자리 잡은 2세, 3세들은 조선인촌을 떠나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오사카시 이쿠노와 같이 특수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실질적으로 조선인촌은 해체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이후 뉴커머의 유입으로 형성된 코리아타운은 조선인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형성된 거주 공간이 아닌 경제적 목적 아래 형성되고 발전한 상업 공간으로 차별된다. 뉴커머 유입으로 형성된 대표적인 코리아타운으로는 도쿄의 신오쿠보 지역을 꼽을 수 있다. 재일 한인이 생명 유지를 위하여 정주 과정을 통해 형성된 한인 집거지는 2002년 한류 붐을 계기로 한국 문화를 발신하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한국 음식은 물론 한국의 노래와 화장품 등 한국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