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統一運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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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統一運動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統一運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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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인들의 한반도 통일을 위한 운동.
재일 한인 사회에서 통일 운동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주도하였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반공과 자유 민주주의를 중시하면서 한국 정부의 통일 정책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는 사회주의 고수, 연방제, 북한의 통일 정책을 지지한다. 두 단체의 통일 운동은 조국 지향적 특성을 띠고 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이승만 정권의 북진 통일론부터 시작하여 남북 정상 회담을 거쳐, 한국 정부가 1994년 발표한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수용하고 있다. 남북한이 화해 협력 단계와 남북 연합 단계를 거쳐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 국가를 수립한다는 단계적·점진적 통일론이다. 반면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또한 조국 통일의 촉진을 최대의 과제로 선정하고, 북한 정권 수립 당시부터 김정은 정권까지의 북한 통일 방안을 지지하면서 통일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은 2000년부터 한반도 통일 방안으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주장하였다.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원칙에 기초하여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채 그 위에 민족 통일 기구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1953년 7월, 정전 협정이 체결될 무렵에 김삼규(金三奎)[1908~1989]는 한반도의 중립화만이 통일과 독립, 평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는 양대 진영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대전제가 된다는 가정에서 중립화 통일론을 주장하였다. 김삼규는 한인 사회의 분열과 대립의 근원을 한반도 분단 및 남북한 정권의 상이한 이념적 충돌에서 찾았다. 통일을 위한 해법으로 재통일 차원에서 한반도를 중립화하여 외세를 배격하며 새로운 전쟁을 막고, 좌·우라는 이념적 색채를 타파하는 통일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남북한의 통일론에 절대적 지지를 표명하고 있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는 김삼규의 통일론을 이단 통일론으로 인식하였다. 김삼규의 중립화 통일론은 재일 한인 사회보다는 한국의 혁신계 및 대학생들에게 새로운 통일 담론을 제공하였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를 중심으로 분열과 대립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통일 운동을 활용하여 두 세력을 통합하기 위해 1955년 1월, 남북통일촉진협의회가 결성되었다. 남북통일촉진협의회는 남북한 자유 총선거를 통해 통일 중앙 정부를 수립하고, 통일 국가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했지만 북한의 주장에 가까운 통일론이었다. 남북통일촉진협의회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방해 및 비협조로 6개월에 걸친 통일 운동으로 활동을 마감하였다. 1956년 권일, 이강훈이 중심이 된 우리민주사회주의동맹이 결성되었고 공산주의나 반공주의가 아닌 민주 사회주의에 입각한 통일을 주장했다. 그러나 대중적 지지와 동원이 결핍된 결과, 한국 정부를 지지하는 단체로 전락하였다. 4·19 혁명은 재일 한인 사회에 화합과 통일 운동의 불꽃을 점화시켰다. 1961년 조국평화통일남북문화교류촉진재일문화인회가 조직되어 이상적 통일보다는 현실적 교류, 즉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문화인들이 사진전, 합동 미술전 등 문화제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통일 운동을 추진하였다.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과 10월 유신의 선포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내부 갈등의 가속화 및 재일 한인 중심의 자주적 통일 운동의 전환점이었다. 민족통일협의회 등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비주류 세력과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한국의 민주화 세력이 1973년 8월,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를 결성하였다.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조국 지향적 통일 운동의 비판, 양 단체의 대립 불식과 공존의 장 형성, 박정희 정권 타도, 민주 정권의 수립, 미군 철수, 남북 연방제에 의한 점진적 통일을 주장하였다.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통일 운동의 기본은 자주·민주·통일이다. 1978년 대법원은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의 친북 성향적 활동에 대해 반국가 단체 판결을 내렸다.
한국의 민주화가 진전된 상황에서 한반도 ‘민주’와 ‘통일’의 논쟁 결과, 활동 노선에서 민주화 운동보다 통일 운동을 중시하면서 1989년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를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으로 변경하였다.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은 6·15 및 10·4 선언의 계승 차원에서 민족 통일 대회, 민족 통일 대축전, 통일 마당의 개최를 통해 한반도 통일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재일 동포 정갑수 등 3세대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자이니치로 분열하면서 대립하는 재일한인들이 이해관계를 청산하고, 이념, 사상, 소속, 국적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축제를 고안하였다. 재일 한인 모두가 염원하는 것은 한반도의 통일이며, 통일의 화두는 동포들을 하나로 결집시켜 통합의 기제가 될 것으로 판단하여 원 코리아 페스티벌(One Korea Festival)을 출범시켰다. 2016년까지 32회가 개최되었다. 이 외에도 삼천리철도, 평화통일연합, 재일코리아협회 등이 통일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