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舞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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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舞踊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舞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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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무용 활동을 하였거나 무용가로 활동하고 있는 재일 한인 출신 무용가의 활동.
해방 후 일본에서 재일 한인에게 전승되고 있는 무용은 한국으로부터 계승되고 있는 전통 무용과 북한으로부터 계승되고 있는 전통 무용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국에서 전승된 무용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정민(鄭珉)을 비롯한 무용가들이 한국계 민족 학교와 개인 학원에서 한국 무용을 가르치면서 계승되었다. 당시 재일 한인들은 한국에 가서 뛰어난 대가로부터 전통 무용을 전수받고자 하였다. 1962년 제정된 중요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인정받았던 무용가들에게 무용을 배우고 인정받으면 일본으로 돌아가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한국에서 전통 무용을 배우고 일본으로 돌아가 한국의 전통 무용을 가르치는 무용가도 오늘날 활동하고 있다.
해방 후 북한에서 전승된 무용은 재일본조선인연맹의 조선 민요와 악기 연주, 조선 무용, 조선어 연극의 공연이 문화공작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문화공작대는 재일 한인들에게 계발과 선전을 목적으로 동포가 생활하는 지역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개최하였다. 해방 이전 일본의 예술 대학 등에서 성악을 배운 사람들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1955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결성되고 이어 재일조선중앙예술단이 결성되었다. 1959년부터 귀국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북한에서는 이미 체계화된 최승희의 조선 무용이 전승되었다. 1974년 금강산가극단에서 조선 무용이 전승되고 있었다. 1984년 임추자(任秋子)·이미남(李美南) 등의 무용가들이 북한에서 인민 배우 칭호를 받았다. 오늘날 일본의 조선 학교에서는 체계적인 조선 무용이 계승되고 있다. 조선 무용을 배운 백향주(白香珠)는 한국에서 무용가로 활약하고 있다.
재일 한인 2세 무용가 배이화는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의 역사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배이화는 일본 기후현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배효자이다. 아이치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해가무단에 입단하여 한국 전통 무용을 배우면서 예술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93년 개인 무용 교실을 열어 재일 한인과 일본인에게 한국 무용과 한국의 전통 악기를 가르치면서 교토 지역의 중·고등학교를 순회, 인권 강사로 지금까지 300여 회를 강의를 하였다. 일본의 영상작가 미나토 겐지로는 일본 사회의 소수 민족 차별에 맞섰던 배이화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영화 「꽃처럼 있는 그대로」를 제작하였다.
전통 무용은 고국을 떠나 온 재일 한인들에게는 고국과 민족에 대한 기억 역할을 하였다. 재일 한인이 한국의 전통 무용을 직접 익혀 나감으로써 재일 한인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전통 무용은 일본 공립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중요한 민족 교육이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재일 한인들이 한국이나 북한에서 직접 전통 무용을 배워서 일본으로 돌아가 재일 한인이나 일본인들에게 무용을 가르치며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