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美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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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美術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美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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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일본에서 활동하였거나 활동하고 있는 재일 한인 미술가의 미술 활동.
해방 이전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 한인 미술가들은 미술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유학생들과 한국의 사회·정치적 상황에서 벗어나 일본으로 건너간 작가들로 나뉘어 있었다. 유학생들은 대부분 학업을 끝내고 귀국하여 고국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작가들은 일본에서 머물게 되었다. 재일 한인 미술은 1940년대부터 일본에 남아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갔다.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재일 한인 1세대를 중심으로 한 민족 미술 단체가 중심이 되어 활동하였다. 해방 후 재일 한인 미술가들은 민족적 동질성의 강조와 민족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재일 미술 단체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재일 한인 미술가들은 1947년 최초의 미술 단체인 재일조선인미술가협회를 결성하였으며, 이철주(李哲州)·김창덕(金昌德)·백령(白玲)·표세종(表世鐘)·박찬근(朴燦根) 등이 참가하였다. 1953년 재일조선인미술가협회의 기관지인 『조선미술』이 발행되었고, 이인두(李寅斗)·조양규(曺良奎)·전화황(全和凰)·허훈(許壎)·오임준(吳林俊) 등이 참가하여 1956년 제1회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1954년부터는 일본 앙데팡당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전후 일본의 리얼리즘 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리얼리즘 미술이란 민족 미술이나 민중 미술을 뜻하며, 사회주의적 사실(寫實)을 말한다. 재일 한인 작가들은 일본의 청년미술가협회와 함께 이데올로기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사회적 문제를 표현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미술계에 신선한 영향을 주었다.
1959년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이 창립되어 송영옥(宋英玉)·채준(蔡峻)·오일(吳日)·이경조(李景朝)·이찬강(李讚康) 등이 참여하였다. 1962년 재일 한인 미술가들은 화집을 발행하였으며, 화집 발행을 통해 민족의식 자각과 함께 민족주의적 특성을 이론적으로 탐구와 함께 사회주의 이념을 표현하였다. 1961년 재일본조선인연맹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계의 재일한국백엽동인회 미술부와 재일코리아미술가협회의 화가들은 제2회 연립미술전을 개최하였다. 이 때, 곽인식(郭仁植)·오병학(吳炳學)·경용이(庚龍伊)[이타미 준[伊丹潤]]·김태곤(金泰伸) 등이 참여하였다. 곽인식뿐만 아니라 195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간 이우환(李禹煥)은 일본의 모노파[物派, もの派]의 선구자가 되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인해 재일 한인 사회가 분열된 시기이다. 재일 한인 사회는 1960년대부터 재일 한인 사회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이념적 대립과 갈등이 팽배해졌다. 이로 인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가입하였던 작가들이 탈퇴하면서 재일 한인 미술사에 변화가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재일 한인 미술가들이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을 탈퇴하고 독자적으로 개인전이나 일본 화단의 단체전에 참여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재일 한인 사회와 역사적 시대의 모순에 대한 반성과 자각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이념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2·3세와의 세대 교체와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자기표현의 장을 세계로 확장시키도록 하였다. 1981년 2·3세 젊은 미술가들은 고려미술회를 발족하여 사상을 뛰어넘어 조국의 자주 평화 통일을 표방하고자 하였다.
재일 한인 3·4세대들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3·4세대들은 기존의 재일 한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다양한 방면의 미술 경향을 보여 준다. 1999년 발족한 아름전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민족 미술을 새로운 시각으로 전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김등미(金登美)·이국자(李菊子)[미우라 리에코[三浦利江子]]·김애자(金愛子)·김영숙(金英淑)·강경자(姜慶子) 등의 여성 작가들이 많이 참여하였고, 문승근(文承根)·김석출(金石出)·홍성익(洪性翊)·박일남(朴一南)·이용훈(李鏞勳)·임충혁(林忠赫)·윤희창(尹熙倉) 등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참가하였다. 특히 이우환과 문승근·곽덕준·이타미 준·손아유(孫雅由)·김선동(金善東)·최광자(崔廣子) 등은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과 같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면서 작품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있던 재일 한인 미술가들이 발굴된 계기는 2000년 국제 미술전 제3회 광주 비엔날레를 기념한 재일의 인권전에서 선보인 하정웅(河正雄) 컬렉션이었다. 하정웅 컬렉션은 한국과 일본 양쪽에 무관심과 소외를 받아 왔던 재일 한인의 역사를 환기시키면서 20세기에 재일 한인 미술이 근대 미술에 큰 줄기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되지 않았다는 점에 국내외 미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재일 한인 미술의 연구와 한일 미술 교류의 기획을 추진하는 이미나(李美那)·고성준(高晟埈)·고만자(高滿子)·백름(白凜) 등 재일 한인 학예원들이 배출되었다. 1993년 한국근대미술사학회의 창립을 시작으로 1997년, 1998년, 2009년 국립 근대 미술관 주최 ‘근대를 보는 눈 전(展)’ 등으로 한국 근대 미술사를 다시 보는 전람회가 개최되었다. 전시회마다 조양규·송영옥·전화황 등 재일 한인 미술가의 작품들이 선정되어 재일 한인 미술이 한국 현대 미술사 속에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재일 한인 미술의 역사적 자료는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갈등, 대립과 불신, 1세대와 2세대를 지나면서 정체성의 약화로 인한 재일 한인 미술 인식의 부족으로 상당수가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