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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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일본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재일 한인의 진출 상황과 미소라 히바리를 재일 한인 2세로 착각한 사건 개관.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는 일본 쇼와 시대[1926~1989]를 대표하는 가요계의 여신, 국민 가수로 일본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라고도 불린다. 1937년 5월 29일 태어나 1989년 6월 24일 사망하였다. 본명은 가토 가즈에[加藤和枝]로 아버지 가토 마스키치와 어머니 기미에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제자매들이 모두 배우, 가수로 활동하여 일본 연예계와 인연이 깊은 집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때 생선가게를 했던 아버지 가토 마스키치가 한국인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미소라 히바리를 재일 한인 2세로 착각하기도 했는데, 실제 조사 결과 ‘한국과의 관계가 없음’이 판명되었다. 이러한 소문은 일본 연예계에서 재일 한인 출신들이 인기를 구가하게 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혹은 남동생이 폭력단과 연루되면서 재일 한인이라는 소문이 확산되었다고도 한다. 이러한 오인을 ‘재일 인정’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일본 연예계에 옛날부터 공공연한 비밀로 전해오는 말 중 “연예인 중에 왜 재일 한인이 많을까”라는 게 있다. 이에 대해 실력 세계설, 예능 신분설, 폭력단 관여설 등이 있다. 이 중 폭력단 관여설은 이러하다. 폭력단 출신의 내역은 부락[동화] 60%, 재일 한인 30%, 일반 일본인 등 10%로, 약 65만 명이라는 재일 한인 중 약 50%가 효고, 오사카, 교토에 집중 거주하는 것과 야마구치구미의 발전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또 야마구치구미 덕분에 커진 요시모토흥업도 마찬가지다. 야마구치구미와 요시모토흥업은 메이지 시대 초대 이후 삼대째에 고베 연예사를 창업한 때부터 연예계와 조선 민족과 야쿠자와의 관계가 깊어졌다고 한다. 연예계 조선 민족의 거의 전원이 일본인으로 활동하였다. 야마구치구미의 구성원 25,000명 중 약 70.%의 사람이 부락 출신자이며 약 10%의 사람이 한국인 등 외국인이다. 폭력단과 부락[동화]은 한국 제주도에서 도망 온 백정이 많다는 소문이 있다. 재일 한인 대부분이 제주도 출신이므로 이러한 소문이 났다고 여겨진다.
미소라 히바리는 1937년 5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이소고구에서 태어났다. 세이카 학원[精華学園] 고등부를 졸업했다. 사후에 일본 여성 최초로 국민 영예상을 수상하였다. 1949년 7월 「갓파 부기우기」를 통해 가수로 데뷔, 데뷔 싱글과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슬픈 휘파람」의 동명 주제가까지 연이어 히트를 하게 된다. 1950년 영화 「도쿄 키드」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1957년 1월 13일 국제극장에서 공연 도중 동갑내기 여성 극성팬에게 황산테러를 당했으나 다행히 얼굴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범행을 저지른 여성팬은 이전에도 미소라 히바리의 집에 찾아 가거나 전화를 걸었으며 공연 대기실에도 들어가려고 했으나 제지당한 적이 있었다. 범행 이유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미소라 히바리가 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1960년 「애수 부두」로 일본 레코드 대상 가창상을 수상하였다. 1962년에 당시 인기 영화 배우였던 고바야시 아키라와 결혼하였지만 1964년 이혼하였다. 이혼 직후인 1964년 12월 텔레비전 드라마 「야와라」의 주제가로 사용된 동명의 곡을 발표해 크게 인기를 얻어 180만 매의 음반을 판매하고,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한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친어머니였던 가토 기미에가 사망하고, 곧이어 친동생과 친한 친구마저 차례로 사망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인기 또한 전성기와는 다르게 눈에 띄게 떨어져 술과 담배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졌고, 몸은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1987년 4월 22일에 후쿠오카 제생회 병원에서 ‘만성 간염 및 양측 대퇴골 골두 괴사’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재기 불가능’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수개월간 요양한 뒤 8월 3일 퇴원하고, 10월에 신곡 ‘흐트러진 머리’라는 뜻의 「미다레가미」로 복귀한다. 1988년 4월 11일에는 도쿄 돔에서 5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복귀 콘서트 ‘불사조- 날아라 새로운 하늘을 향해’를 가져 완전 복귀를 선언한다. 하지만 이미 상한 몸으로 인해 전국 공연을 가지던 도중에도 수차례 극비 입원 하였다. 1989년 1월 11일에는 인생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흐르는 강물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을 발표한다. 곧 전국 투어 콘서트를 시작하지만, 다시 입원과 일시 퇴원을 반복했다. 결국 1989년 3월 21일 자택에서 닛폰 방송의 라디오 특집 생방송 「미소라 히바리, 감동의 이 한 곡」을 방송하고 난 뒤 급격히 악화되어 준텐도병원[順天堂病院]에 입원하였고 이후 일정은 중지되었다. 1989년 6월 13일 결국 의식 불명으로 인공호흡을 시작했고, 6월 24일 사망하였다. 1993년 교토시에 미소라 히바리관이 개관하였으나, 이용자 감소로 2006년 11월 30일 폐관되었다. 폐관된 히바리관은 히바리 프로덕션에서 18억 엔에 매입하여, 2008년 봄에 다시 오픈하였다.
미소라 히바리의 예처럼, 어떤 인물을 사실이나 근거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재일 한인이나 한국계 인물로 인정하는 것을 재일 인정(在日認定)이라고 부른다. 일본 고유 문화나 인물을 근거 없이 한국 기원으로 특정하는 것이다. 한편 근년에 일본에서는 반일적인 인물을 가리켜서 그 인물을 재일 한인 출신이라고 치부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재일 인정에 속한다. 두 경우 모두 재일 인정이기는 하지만 그 목적이 전혀 다른 사회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재일 인정을 받은 연예인이 법정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기타노 다케시의 경우 본인이 착각해서 재일 한인의 자손[쿼터]이라고 발언하였다. 후에 어머니 쪽에서 부정하는 증언을 하였지만, 여전히 한국계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라는 보도가 돌고 있다. 이 외에도 야마구치 모모에, 다카쿠라 겐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 스타를 비롯해서 1980년대 유명했던 이아돌 가수 마쓰다 세이코, 싱어송라이터 마쓰토야 유미, 구라키 마이, 야자와 에이키치, 이시다 유리코, 이시다 히카리, 후세 아키라, 이쓰키 히로시, 구사나기 쓰요시, 기무라 다쿠야, 시나 깃페이 등 유명 연예인들이 재일 인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한국에서 인기가 있다거나 한국 방송에 출현을 했다거나 재일 한인 단체가 주최하는 모임에 참가했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소문이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일본에서 예능과 관련하여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으로는 아라이 히로후미[배우. 재일 한인 3세. 아오모리현 출신], 아란 케이[본명 야스다 히토코. 배우. 재일 한인 3세. 시가현 출신], 앙사리[본명 안사리. 싱어송라이터. 재일 한인 3세. 나고야 출신], 이 마사미[이정미, 가수. 재일 한인 2세], 이토 유미[여배우, 가수. 재일 한인 3세. 돗토리현 출신], 이리야 마이[여배우. 재일 한인 4세. 효고현 출신], 조니 오쿠라[본명 박운환. 가수. 재일 한인 2세. 공저 『폭력 청춘』에서 공표], 기무라 아쓰키[본명 박수승. 통명 기무라 히데카쓰(기무라 히데고). 가수], 김구미자[김 구미코. 여배우. 재일 한인 3세. 나가노현 출신], 시온[본명 박유향. 가수], 쇼후쿠테이 코마쓰[본명 하동안. 만담가. 재일 한인. 시가현 출신], JONTE[본명 시종태. 가수. 재일 한인], 소닌[본명 성선임. 가수·탤런트. 재일 한인 3세. 고치현 출신], 나가하라 세이키[본명 장성희. 탤런트], 나카무라 유리[본명 성우리. 여배우. 오사카부 출신. 아버지가 재일 한인 3세이며 어머니가 한국 태생으로 한국 국적], 하쿠류[본명 전정일. 배우, 음악가. 사가현 출신. 재일 한인 2세], VERBAL[본명 유영기. 뮤지션. m-flo의 멤버. 재일 한인 3세. 부모 둘 다 한국 국적. 도쿄도 출신], PUSHIM[본명 박부심. 가수. 재일 한인. 오사카부 출신], Rihwa[본명 박이화. 가수. 재일 한인 4세. 홋카이도 삿포로시 출신으로 한국 국적], 가네코 겐[본명 김현. 배우. 도쿄도 출신], 코 겐테쓰[본명 고현철. 요리 연구가. 재일 한인 2세], 조민화[배우. 재일 한인 3세. 오사카부 출신], 조방호[배우. 재일 한인 2세. 오사카부 출신], 하나오카 짓타[AV 남자배우. 재일 한인 2세] 등이 있다,
한편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기타노 다케시[北野武]는 한 인터뷰에서 “내 할아버지는 행불자다. 친척들이 전해주는 바에 따르면 부랑아라고도 하고 거지였다고도 한다. 아무도 정체를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한국계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호적이 없기 때문에 확인은 못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기타노 다케시 역시 한국계라고 밝힌 것에 대해 일본 언론에서는 “한국 미디어가 믿을 수 없는 보도를 했다.”라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일본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연예인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계로 밝혀질 경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뛰따르고 있어 밝히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