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빼앗긴 아픔의 그림자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강제 동원 현장과 추모 시설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정의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인이 일본으로 강제 동원된 현장과 추모 시설.

개설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일본의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에 따라 군수 물자의 보급과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전면적인 국가 통제와 동원을 목적으로 1938년 4월 1일 국가총동원법을 제정·공포하였다.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일본 본토와 식민지, 점령지를 대상으로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한 총동원정책을 실시하였다. 국가총동원법은 1938년 5월 5일부터 한반도에도 실시되었다. 일본은 인력 동원 이전에 노동력의 양과 질, 소재에 관한 실태파악을 위해 사전에 각종 직업 능력 조사 제도를 실시했다. 「국민징용령」[1939년 7월 8일 제정, 칙령 451호]을 실시하기 위해 국민직업능력신고령을 공포[1939년 1월 7일. 한반도에는 6월 1일부터 적용]하고, 다음 단계로 노동력 통제, 자금 통제, 사업 통제, 문화 통제에 관한 각종 관련 법령을 제정 공포한 후, 이를 근거로 인력을 동원했다. 이에 따라 식민지 조선에서 다양한 형태의 강제 동원이 실시되었다.

동원과 일본으로의 송출

일본 지역으로 노무자 송출은 1939년 7월 28일, 내무성과 후생성이 발표한 통첩 ‘조선인 노무자 내지(內地) 이주에 관한 건’을 계기로 실시되었다. 세 가지 동원 방식을 시행하기 위해 중앙과 지방에 각각 노무 동원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 부서를 설치했다. 중앙 조직은 조선총독부 소속 부서 가운데 노무 동원 전반에 관한 업무를 직접 전담한 부서와 그 외 관련 부서가 해당한다. 노무 동원을 포함한 총동원 계획의 수립 및 총동원 운동 업무를 담당한 부서, 노동자 단속 업무 담당 부서, 국민 연성 및 근로 교육 업무 담당 부서, 원호 관련 업무 담당 부서 등이다. 이 가운데 직접 노무 동원 송출 관련 업무를 전담한 중앙 행정 기구는 1939년 2월 내무국 사회과 노무계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부서다. 중앙 행정 기구는, ‘내무국 사회과 노무계[1939년 2월]→내무국 노무과[1941년 3월]→후생국 노무과[1941년 11월]→사정국 노무과[1942년 11월]→광공국 노무과[1943년 12월]→광공국 근로조정과, 광공국 근로동원과, 광공국 근로지도과, 근로동원본부[1944년 10월]→광공국 근로부 조정과, 광공국 근로부 동원과, 광공국 근로부 지도과[1945년 1월]→광공국 동원과, 광공국 근로부 근로 제1과, 광공국 근로부 근로 제2과[1945년 4월]’로 변천되었다. 지방 조직은 도 단위에서 지사관방, 내무부, 광공부가 담당했고, 그 이하 행정 조직인 부와 군, 도(島)의 노무 관련 업무는 서무과와 내무과, 그 하위의 서무계와 내무계가 각각 담당했다. 읍과 면에서는 노무계, 병사계, 권업계, 서무계, 사회계 등 지역의 사정에 따라 소속 부서가 달랐다.

강제 동원의 현장들

강제 동원 최초의 현장은 홋카이도의 가야누마탄광[茅沼炭鑛]이다. 가야누마탄광은 1863년 개광 이후 1963년까지 운영되었다. 가야누마탄광에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동원된 것은 1939년부터였으며, 1939년 10월 130명이 동원된 것을 비롯하여 해방될 때까지 1000명~1500명이 강제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가야누마탄광은 옛 흔적을 찾기 어렵고 잔해만 남아 있다. ‘즈리야마’라고 불리는 패석으로 이루어진 산만 우뚝 솟아 있다. 다섯 개의 갱구 가운데 현재 확인된 것은 제3 사갱이다. 경사가 약 25도 정도로 완만한 기울기의 경사굴 입구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오랜 시간을 관리하지 않아 굴 내부에는 전자 제품 등 패자재가 버려져 있고, 박쥐들만 서식하고 있다. 위치는 홋카이도 남서부 샤코찬(積丹)반도 연안에 있는 도마리무라[泊村]에 있다.

최근 일본에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나가사키현 하시마[端島]와 다카시마[高島]의 탄광도 조선인 노동자 강제 동원의 현장이다. 군함도로 널리 알려진 하시마에 있는 하시마탄광도 1937년경부터 해방될 때까지 강제 동원이 진행되었다. 해저 탄광인 하시마탄광은 특히 갱내에 들어가면 사방에서 물이 떨어질 정도로 채굴 조건이 최악이었으며, 낙반 사고로 조선인 노동자의 희생이 많았다. 이곳에서 채탄 작업을 하였던 한 노동자는 “매일 사상자가 속출하여 일하러 가면서 항상 불안에 떨었다.”라고 진술하였다. 일본 정부는 하시마를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될 때 조선인의 강제 동원 기록을 넣기로 했지만 아직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일본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도쿄의 인근에도 강제 동원의 현장이 있다. 행정 구역으로는 도쿄도 오가사와라제도[小笠原諸島村]의 이오지마[硫黃島]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4년 이오지마에 군사 시설인 활주로를 만들기 위해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 동원하였다. 교토의 우토로도 활주로 공사를 위해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 동원한 곳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큐슈, 오키나와 지역에도 강제 동원의 현장이 남아 있다.

강제 동원과 추모 시설

일제 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강제 동원의 현장은 많이 있지만 추모 시설이 건립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마나 추모 시설이 남아 있는 곳은 큐슈의 후쿠오카현 지쿠호[筑豊] 일대이다. 지쿠호 지역은 1478년부터 채탄을 시작한 곳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탄좌로 알려져 있다.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전선이 확대됨에 따라 군수 물자인 석탄을 생산할 노동력이 필요하자 1939년 강제 동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지쿠호 일대의 탄광은 1973년 폐광될 때까지 운영되었으며, 2011년 유네스코 세계 기억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강제 동원 추모 시설은 다가와시[田川市]에 있는 석탄역사박물관에 있는 ‘한국인 징용 희생자 위령비’와 이즈카시[飯塚市] 이즈카시 공동묘지에 있는 무궁화당이다. 무궁화당은 2000년 이즈카시에서 무연고 한국인 희생자 유골 188구를 모아 안치하였다. 이외에도 추모 시설은 아니지만 미야와카시[宮若市], 미쓰바라탄광[松原炭鑛], 이즈카시에는 당시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생활하였던 기숙사인 료[寮]로 추정되는 사택이 남아 있다. 이외에 오키나와현 요미타촌 세나하에는 강제 동원되었다가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를 위한 ‘한의 비’가 있으며, 오키나와 남부 이토만 오키나와평화공원에는 ‘한국인 위령탑’이 있다.

최근 들어 한국의 평화디딤돌과 일본의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두 한일 민간 단체가 손잡고 홋카이도 슈마리아니[朱鞠內]댐 등에 강제 동원되었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인근에 있는 코켄지[光顯寺], 비바이시[美唄市] 동명[東明]에 있는 조코지[常光寺], 삿포로시[札晃市]의 혼간지[本願寺]에 각각 평화의 디딤돌을 건립하였다.

다양한 추모 행사

강제 동원으로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 유골이 국내 귀환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2010년 재일본대한민국민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시미즈 지역 간부들로 구성된 시미즈 조선인 유골봉환 추진위원회에서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구조선인 유골 안치당에 있던 조선인 유골 94위를 국내로 보완하였고, 민간단체인 아태평화교류협회에서도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추모 행사로는 대한불교관음종이 야마구치현 우베시[宇部市] 니시카와[西岐波] 마을에서 조세이탄광[長生炭鑛] 강제 동원 희생자를 위한 추모 행사를 해마다 진행하고 있으며, 2017년 2월 17일 영가 위령재를 가졌다.

평가와 의의

강제 동원은 일제 강점기에 진행된 역사적 사실이지만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 강제 동원 현장의 경우 이를 기록하고 후세에 남기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일부 추모 시설과 추모 행사를 통해 기억하고 전승되고 있지만, 하시마[군함도]의 경우처럼 강제 동원의 역사를 지우고자 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현 시점에서 강제 동원과 관련된 역사와 기역, 그리고 전승에 대해 더 많은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 『사망 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 탄광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 실태 기초 조사』(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2012)
  • 유기현, 『사진과 지도로 보는 일본 지쿠호 지방 답사기, 일본 탄광 도시』(라이프, 2013)
  • 『일제 말기 이노시마 강제 동원 조선인 피해 실태 기초 조사』(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2012)
  • 정혜경, 『홋카이도 최초의 탄광 가야누마와 조선인 강제 동원』(선인, 2013)
  • 『월간조선』(조선일보사, 2013. 3)
  • 『중도일보』(2016. 8. 28)
  • 『대한뉴스』(2016. 10. 7)
  • 『불교방송』(2017. 2. 6)
  • 『시사투데이』(2017. 4. 28)
  • 『경향신문』(2017. 5. 29)
  • 『국제신문』(2017.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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