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徐載弼改化獨立民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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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세계)/문학 작품 |
지역 | 미국 워싱턴 D.C. 매사추세츠 애비뉴 노스웨스트 2320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올드 요크 로드 6705 |
시대 | 현대/현대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95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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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간행 시기/일시 | 2009년 9월 25일 |
배경 지역 | 미국 워싱턴 D.C. 매사추세츠 애비뉴 노스웨스트 2320 |
배경 지역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올드 요크 로드 6705 |
배경 지역 |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가내길 18-35[용암리 528] |
배경 지역 |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용암길 8[용암리 1024] |
원어 주소 | 2320 Massachusetts Avenue Northwest, Washington, DC 20008, USA|6705 Old York Road, Philadelphia, PA 19126, USA |
영문 주소 | 2320 Massachusetts Avenue Northwest, Washington, DC 20008, USA|6705 Old York Road, Philadelphia, PA 19126, USA |
GPS 좌표 | 38.912080824139224, -77.05138576005095|40.05509474958887, -75.14046096571296 |
성격 | 단행본|도록 |
작가 | 홍선표 |
200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출간된 서재필의 삶을 각종 자료로 조명한 홍선표의 도록.
『서재필 개화 독립 민주의 삶』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서재필기념재단[The Philip Jaisohn Memorial Foundation]에서 홍선표(洪善杓)에게 의뢰하여 2009년에 발행한 책이다. 한국 근대사를 전공하고 한양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홍선표가 서재필(徐載弼)[Philip Jaisohn][1864~1951]의 개화, 독립, 민주의 삶을 도록 중심으로 조명하였다. 서재필은 구한말에 김옥균·박영효·홍영식·서광범 등 개화파의 일원으로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여 의사가 되었다. 미국으로 귀화한 후에도 일시 귀국하여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여러 방향으로 도움을 주었고, 광복 후에는 미군정청 고문으로 일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가 사망하였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서재필기념재단은 1975년 비영리재단법인으로 설립되었으며,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외곽에 독자적인 건물을 가지고 서재필을 기리는 각종 기념사업뿐만 아니라 한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와 사회봉사, 교육 및 문화 사업 등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서재필 개화 독립 민주의 삶』은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가족-서재필은 전라남도 보성의 외가에서 부친 서광효의 4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출생한다. 서울에서 광산 김씨와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갑신정변의 실패로 모두 죽어 홀로 미국으로 망명한다. 고학으로 미국에서 의사가 된 서재필은 미국인 뮤리엘 암스트롱과 결혼해 스테파니와 뮤리엘을 낳는다.
2장 개화운동-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1884년 12월 개화파 인사들과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일본으로 망명한다.
3장 개척자의 삶-일본으로 망명하였으나 곧 다시 미국으로 망명한다. 홀렌백이라는 은인을 만나 해리 힐맨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해 한국인 최초로 의학사[M.D]가 된다. 조지 암스트롱의 딸인 뮤리엘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개인병원을 개업한다.
4장 계몽운동-1895년 12월 말 조국으로 돌아온다.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한다. 독립협회, 독립문, 독립관을 설립한다. 자주독립 사상과 민주 민권사상을 고취하는 데 힘쓴다. 배재학당을 비롯해 여러 기관에서 강연을 하고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개최해 청년들에게 근대 민족의식을 일깨운다. 1898년 5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간다.
5장 사업 활동-1899~190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위스터연구소에서 의학 관련 업무에 종사한다. 1904년 해리 힐맨 아카데미 1년 후배인 해럴드 디머(Harold Deemer)와 인쇄 및 문구점 사업을 시작한다. 1914년 단독으로 필립제이슨회사를 운영한다. 독립운동에 종사하면서부터 사업이 쇠퇴해 1924년 파산한다. 무역업을 하는 유한주식회사의 필라델피아지사 사장으로 1926년까지 활동하나 유일한의 귀국으로 모든 사업을 정리한다.
6장 독립운동-국내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서재필은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회의를 개최한다. 이후 필라델피아에 대한민국통신부와 한국친우회 등을 설립해 활발한 외교 활동을 전개한다.
7장 새로운 사업과 의료 활동-62세의 나이에 1926년 9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특별 학생으로 입학해 의학 공부를 재개한다. 한인 최초 병리학 전문의가 된다.
8장 광복된 한국에서-1947년 7월 미군정 최고 고문이자 과도정부 특별 의정관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해 국민을 대상으로 계몽운동을 한 후 1948년 9월 한국을 떠난다.
9장 만년의 삶-1951년 1월 노리스타운 몽고메리병원에서 여생을 마감한다.
10장 추모 사업-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 지역의 한인들이 서재필기념재단을 설립한다. 한국에서는 송재문화재단을 설립한다. 서재필 생가를 복원하고, 서재필기념공원을 조성한다. 서재필선생기념사업회를 설립한다.
서재필의 전 생애를 연대기 순으로 조명한 도록으로 서재필이 남긴 각종 자료와 사진 등을 정리해 서재필의 삶과 정신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가족관계, 제2장은 한말의 풍경과 개화운동과 갑신정변, 제3장은 개척자로서의 삶[망명 직후, 해리 힐맨 아카데미에서, 의학 공부, 결혼], 제4장은 계몽운동[귀국, 『독립신문』의 발간, 독립협회의 결성과 활동, 배재학당에서의 강의와 토론 지도, 한국을 떠나며], 제5장은 사업 활동, 제6장은 독립운동[2.8독립선언과 3.1독립운동의 발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제1차 한인회의, 필라델피아 대한민국통신부, 한국친우회, 구미위원회, 워싱턴회의, 태평양회의, 기고 활동], 제7장은 새로운 사업과 의료 활동[유일한과의 새 사업, 의학 연구 및 의사 생활, 안부와 격려, 의사 시절의 가족[1930년대 후반], 미국 징병검사 의무관 활동, 한인자유대회의 참석과 활동], 제8장은 광복된 한국에서-통일, 민주국가 수립 활동[귀국과 환영, 방송을 통한 계몽활동, 독립문 건립 50주년 기념행사, 대통령 추대 운동], 제9장은 만년의 삶, 제10장은 추모 사업[서재필기념재단의 주요 활동, 서재필기념관, 서재필기념재단 연혁, 서재필기념회, 대한민국 정부의 추모 선양, 서재필기념공원, 워싱턴 D.C.에서의 동상 제막, 서재필 어록비], 제11장은 연보로 구성되어 있다.
서재필이 국내에서 활동한 계몽운동 자료뿐만 아니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전개한 독립운동 활동과 생애에 대해서도 신문, 잡지, 출판물, 사진 등의 관련 자료를 통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저서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정확한 연표가 작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