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以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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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세계)/문학 작품 |
지역 | 미국 |
시대 | 현대/현대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918년 5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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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94년 9월 17일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93년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3년 |
성격 | 시집 |
작가 | 박남수 |
1993년 출간된 재미 한인 시인 박남수의 제7시집.
『그리고 그 이후』는 모더니스트, 주지적 이미지스트로 평가받는 박남수(朴南秀)[1918~1994] 가 미국으로 이민한 후 쓴 시집 중 하나로 1993년 문학수첩에서 발간되었다. ‘아내의 돌연한 죽음으로 받은 충격’을 48편의 시에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공초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박남수는 1918년 5월 3일 평안남도 평양시(平壤市) 진향리(眞香理)에서 태어났다. 1933년 희곡 「기생촌(妓生村)」이 『조선문단』에 당선되었다. 1937년 평양의 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39년 「심야(深夜)」, 「마을」, 「초롱불」, 「밤길」, 「거리(距離)」 등이 정지용(鄭芝溶)의 추천으로 『문장』에 발표되면서 등단하였다. 1940년 첫 시집 『초롱불』[삼문사] 자가본(自家本)을 일본 도쿄에서 간행하였다. 1941년 일본 도쿄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45년 일제 강점기 특수은행인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 진남포지점에 입사하였다. 1946년 한국식산은행(韓國殖産銀行)[조선식산은행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50년 2월 변경한 상호] 평양지점장이 되었다.
1951년 1.4후퇴 때 국군을 따라 월남하였다. 1942년부터 1950년까지의 시적 침묵을 깨뜨리고 다시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4년 『문학예술』 편집위원이 되었고 1956년 보들레르의 시집 번역서 『악(惡)의 꽃들』[신생문화사]을 간행하였다. 1957년 박목월(朴木月), 정지용(鄭芝溶), 장만영(張萬榮), 유치환(柳致環) 등과 더불어 한국시인협회를 창립하였다[창립 회원 및 심의위원회 의장]. 「갈매기 소묘」, 「5편의 소네트」 등으로 제5회 자유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58년 제2시집 『갈매기 소묘』[춘조사]를 간행하였다. 1959년 『사상계』 상임 편집위원을 맡았다. 1964년 제3시집 『신의 쓰레기』[모음사]를 간행하였다. 1965년 라게를뢰프의 시집 번역서인 『내 비록 슬퍼도』[삼중당]를 간행하였다. 1968년 번역서 『운명의 별이 빛날 때』[문음사]를 간행하였다.
1970년 제4시집 『새의 암장(暗葬)』[문원사]을 간행하였다. 1973년 한양대학교 문리대학 강사직을 역임하였다. 1975년 문예진흥원 편찬 『민족문학대계』에 서사시 「단 한 번의 무지개」를 수록하였으며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하였다. 1981년 제5시집 『사슴의 관(冠)』[문학세계사]을 간행하였다. 1982년 시집 『한국현대시문학대계』 21권[지식산업사]을 김종한(金鍾漢)과 함께 펴냈다. 1991년 『어딘지 모르는 숲의 기억』[미래사]을 간행하였다. 1992년 『서쪽 그 실은 동쪽』[인문당], 박남수, 고원, 마종기가 공저한 『새소리-재미작가 3인 시선』[삼성출판사]을 간행하였다. 1994년 『소로(小路)』[시와 시학사]를 간행하였다. 1994년 뉴저지주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총 48편의 시를 3부로 나누어서 수록하고 있다. 제1부 ‘죽음, 그리고 그 이후(以後)’에 「영원한 잠」, 「온전한 시력(視力)」, 「빈 가슴 가득히」, 「무한의 품」, 「가을 물」, 「확인(確認)」, 「영생·1」, 「영생·2」, 「풍광(風光) 속에서」, 「서러운 운신(運身)」, 「별똥」, 「한국의 죽음」, 「묘지 안의 결혼식」, 「구름은 흩어져 하늘이 되고」, 「얼굴·1」, 「얼굴·2」 등 16편이 실려 있다.
제2부 ‘아픈 추억’에 「마지막 나들이」, 「후회」, 「다이아몬드 반지」, 「빛깔의 변신(變身)」, 「눈」, 「사뭇 즐거운 속삭임같이」, 「월츠는 둘이서 추는 춤」, 「음악(音樂)」, 「하직(下直)」, 「잊지못할 건(乾)빵」, 「편지」, 「텔레파시(Telepathy)」, 「일몰(日沒)」, 「내일 또 덮여도 쓸어 담는다」, 「비탄」, 「예감 아닌 예감」, 「그날, 그 아침」 등 17편이 실려 있다.
제3부 ‘아내를 보내고’에 「임종(臨終)」, 「스스로도 버리는 포기인가」, 「영결(永訣)」, 「하관(下官)」, 「빈 시간」, 「죽음은 무욕(無慾)」, 「어긋난 인사상(人事狀)」, 「어머니의 맛」, 「한 달후」, 「즐겨 입던 옷가지」, 「새」, 「벌써 사십구일(四十九日)」, 「훈련」, 「나의 무덤」, 「이웃」 등 15편이 실려 있다. 이어서 정진규의 해설 「박남수의 근작 시 읽기」와 박남수의 가족 황갑주의 편지가 실려 있다.
‘아내의 죽음’이라는 단일한 시적 소재를 가지고 인간의 죽음이라는 존재론적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하였다. 헌사 「아내 강창희의 영전에 드린다」에서 말하듯이 『그리고 그 이후』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넘어서서 죽음이라는 인간 존재의 심연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하고 있다. 정진규는 해설문에서 죽음에 이르는 아내의 일상을 명징한 이미지로 구체화하면서 박남수가 ‘새’의 이미지를 통하여 꿈꾸어 온 상승과 비상의 꿈을 더욱 비극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남수는 『갈매기 소묘』, 『신의 쓰레기』, 『새의 암장』과 같은 초기 시집에서 감각적, 존재론적 이미지와 표현미를 중시한 전형적인 모더니스트, 주지적 이미지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미국으로 이민한 이후에 발간한 시집 『사슴의 관』에서는 디아스포라(Diaspora)로서의 유민 의식의 심화와 확대를 보여 주었으며, 『그리고 그 이후』에서는 죽음 의식의 천착과 소외 극복의 시 세계를 보여 주었다. 『서쪽 그 실은 동쪽』에서는 문명 비판과 근원 회귀의 시 세계를 보여 주었고, 『소로』에서는 유한자의 존재 탐구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아내의 죽음에서 비롯된 슬픔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질문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과 소외 극복의 시학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후기 시의 한 특징을 나타낸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본질적인 주제에 천착함으로써 마지막 시집 『소로』에서의 유한자의 존재 탐구의 시 세계와도 연결되는, 노경(老境)에 이른 박남수의 후기 시의 한 특징을 잘 보여 준 시집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