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oice of Korea』

원어 항목명 The Voice of Korea
영문 The Voice of Korea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세계)/문학 작품
지역 미국 워싱턴 D.C.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98년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75년
편찬|간행 시기/일시 1943년 11월
폐간|종간 시기 일시 1962년 4월
원어 항목명 The Voice of Korea
성격 월보|기관지
작가 김용중|김호|김형순|김원영
정의

1943년부터 1962년까지 미국 워싱턴 D.C. 지역에서 김용중이 발행한 한국사정사의 영문 월보.

개설

『The Voice of Korea[한국의 소리]』는 미국 워싱턴 D.C. 한국사정사[Korean Affairs Institute]의 기관지로서 1943년 11월부터 1962년 4월까지 제19권, 271호까지 간행되었다. 한국사정사의 의장은 김용중[1898~1975], 사업관리는 김원영, 회계담당은 김호 등이었고 1951년 김형순이 부의장으로 활약하였다.

김용중은 1898년 3월 2일 충청남도 금산에서 출생하였다. 1917년 유학을 목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가서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일찍이 사업가로 성공한 김호김형순의 회사인 김브라더스에 참여하여 더욱 발전시켰으며, 이후 고향 선배인 송철과 함께 김브라더스의 과일을 위탁 판매하는 K&S Co.를 설립하였다. 미국 한인 사회에서는 김용중, 김호, 김형순을 ‘중가주 3김’이라고 불렀다.1942년 할리우드 라디오 방송국 연설에서 임시정부 승인과 무기 지원을 요청하였다. 1943년 한국사정사를 창립하고 영문 기관지 『The Voice of Korea』를 발간하여 미국과 각국의 정책 담당자들과 한국 독립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광복 후 조선사정소개협회를 만들어 한국의 중립화 통일 방안을 제시하였다. 김형순의 맏딸 메리 김과 결혼하였고, 1975년 9월 UCLA 병원에서 77세로 사망하였다.

내용

광복기부터 조국의 분단과 한국전쟁, 이승만 정권의 집권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정치 사회 현실에 대한 김호, 김형순, 김원영, 김용중 등의 재미사업가이자 독립운동가들의 정치적 견해가 직접적으로 피력되었다. 특히 이승만의 독재와 전쟁 이후 한국의 분단을 강도 높게 비판하였고, 『코리아타임스(The Korea Times)』와 함께 미국에서 리들리 그룹[김형순, 김용중, 김원영]과 김호의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매체였다. 리들리 그룹의 리더 격이던 김호는 한국에서 좌우익의 핵심 인사들을 영입하여 신진당을 창당하고 여운형을 지도자로 세워 통일 조국을 건설하고자 하였으나, 1948년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후 캘리포니아 리들리로 돌아와 중도파 민족주의자라는 정치적 색깔을 견지하면서 지속적으로 당시 남북한의 정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통일 국가 재건의 길을 모색하였다.

의의와 평가

『The Voice of Korea』가 발행된 18년 동안 집필자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한국 본토의 어떠한 방해도 없이 자유롭게 개진되었다.

참고문헌
  • Marn Jai Cha, 『Koreans in Central California(1903-1957): A Study of Settlement and Transnational Politics』(University Press of America,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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