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인 이민 초기 음식점

원어 항목명 Korean Restaurant in New York in the Early Days of Korean Immigration to America
한자 -韓人移民初期飮食店
영문 Korean Restaurant in New York in the Early Days of Korean Immigration to America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세계)/개념 용어(일반)
지역 미국 뉴욕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Korean Restaurant in New York in the Early Days of Korean Immigration to America
정의

한인 이민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미국 뉴욕 지역의 한인 음식점.

개설

한인 식당은 한국인에게는 고국의 음식을 선사하고 이민 생활의 고단함을 달래 주는 곳이었다. 광복 이후 뉴욕 지역의 한인 사회는 유학생이 주를 이루었으며 1950년대까지는 한국음식점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에 뉴욕 맨해튼 지역에는 미신, 아리랑, 삼복, 뉴코리아 등 네 곳의 한국음식점이 창업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미신’은 1970년 이전에 폐업한 것으로 보이며, ‘아리랑’과 ‘삼복’, ‘뉴코리아’는 198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영업하였다.

이민 초기~2000년 이전의 뉴욕 한인 식당

1965년 미국의 「이민 및 국적법」이 개정된 후 뉴욕 한인 사회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70년대에는 한국 기업의 본격적인 미국 시장 진출로 인한 많은 인구의 유입으로 많은 한국음식점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1972년 뉴욕 스케치 기사에는 “뉴욕에 십여 군데나 되는 한국음식점은 낮이면 대개 낯선 외국인들이 줄을 서 자리를 기다렸다. 한국 음악을 들으며 독특한 한식을 즐긴다.”라고 하였다. 또한 1975년 기사에도 “한국인이 3만 명 산다는 뉴욕 일대에는 식료품점만 50개, 음식점은 15개나 있다.”라고 하여 당시 점점 늘어나는 한국음식점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1970년대 창업한 맨해튼 지역 한국음식점들을 창업 시기별로 초반, 중반, 후반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초반인 1970~1973년에는 한국회관, 우리하우스, 호심, 서울하우스, 한국팰리스, 인천집, 우동하우스 등이 창업하였다. 그중 서울하우스는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1972년 9월 1일 기사에 “뉴 레스토랑(new restaurant)”이라고 소개된 것으로 보아 1970년대 초에 창업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한국팰리스 역시 『뉴욕타임스』 1973년 2월 9일 기사에 나타난다.

중반인 1974~1976년에는 명동식당, 갈비하우스, 복전, 옥스 플레이스(Oak's place), 뉴욕한국관 등이 창업하였다. 명동식당은, 창업주 심재길 회장에 따르면, 1974년에 창업하여 1984년까지 10년간 영업하였다. 심재길은 이미 미국에 오기 전부터 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Waldorf Astoria Hotel)에서 연수를 받는 등 준비된 상황에서 명동식당을 창업하였다. 뉴욕한국관은 1975년 문을 열었다. 한편 김유봉 사장의 증언에 의하면 1970년대 중반에 오픈한 것으로 추정되는 ‘복전’이라는 음식점의 자리를 뉴욕곰탕하우스의 전신인 곰탕집이 1979년에 인수해서 들어갔다고 하였다. 후반인 1977~1979년에는 삼오정, 우래옥, 뉴욕곰탕하우스, 한일관, 서울하우스, 새집 등이 창업하였다.

참고문헌
  • 이규진, 「뉴욕 맨해튼 한국 음식점의 초기 역사-1960년대~1970년대를 중심으로」(『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26-6, 한국식생활문화학회, 2011)
  • 월드코리안(http://www.worldkore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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