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Gi Ju S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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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基柱 |
영문 | Gi Ju S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인물(일반) |
지역 | 미국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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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4년 |
활동 시기/일시 | 1949년 |
활동 시기/일시 | 1950년 9월 17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4년 10월 9일 |
출생지 | 평안남도 강서군 |
학교|수학지 | 미국 텍사스주 |
원어 항목명 | Gi Ju Song |
성격 | 한글타자기 발명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미국 유학 시절 한글타자기를 최초로 개발하고 상용화를 시도한 한인.
송기주(宋基柱)[1900~?]는 미국 유학 시절 생물학과 지리학을 공부하던 도중 총 3점의 한글타자기를 발명하였다. 송기주의 한글타자기는 아들 송병훈이 보관하였으며, 송병훈이 사망한 후에는 그 아들 송세영이 보관하였는데, 2014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이하여 ‘송기주 4벌식 한글타자기’를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송세영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이 타자기를 온전하게 보존하고 그 의미를 모두 함께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국립한글박물관에 타자기를 기증해 타자기의 가치를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지를 가장 올바르게 이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말하였다. 송기주의 타자기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타자기이며, 이후 김준성 타자기와 공준성 타자기에 영감을 주었다.
아들은 송병훈, 손자는 송세영이다.
송기주는 1900년 평안남도 강서 지역에서 태어났다. 1924년 텍사스주립대학교[휴스턴]에서 수학하였는데, 이때 한글타자기를 발명하였다. 1933년 세 번째 타자기를 발명한 송기주는 이듬해에 귀국하였는데, 일제 강점기 우리말을 입력하고 출력할 수 있는 타자기를 발명하였다는 점에서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상용화를 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에서 제작하여 종로 화신백화점에 타자기 30대를 진열하였는데, 판매 당시 사무용은 550원, 휴대용은 239원으로 이는 집 한 채 값과 같았다. 42개의 키로 한글을 보다 빠르고 고르게 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으나 가로가 아닌 세로로 작성되는 단점이 있었다. 1938년 일제가 한글 교육을 금지하면서 상용화는 더욱 어려웠지만, 1949년에는 자신의 타자기 글자 모양을 개선하는 데 성공하였다. 계속하여 개발을 이어 가던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 1950년 9월 17일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고, 이후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다.
송기주가 제작한 ‘송기주 4벌식 한글타자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