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원어 항목명 Nam June Paik
한자 白南準
영문 Nam June Paik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세계)/예술인
지역 미국 뉴욕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32년 7월 20일
수학 시기/일시 1952년
수학 시기/일시 1956년
활동 시기/일시 1959년
활동 시기/일시 1961년
활동 시기/일시 1963년 3월 11일
활동 시기/일시 1965년
활동 시기/일시 1963년
활동 시기/일시 1965년
활동 시기/일시 1974년
활동 시기/일시 1975년
활동 시기/일시 1975년
활동 시기/일시 1982년 4월
활동 시기/일시 1984년 1월 1일
활동 시기/일시 1986년
활동 시기/일시 1988년
활동 시기/일시 1992년
활동 시기/일시 1993년
활동 시기/일시 2000년 1월 1일
활동 시기/일시 2000년 10월
몰년 시기/일시 2006년 1월 29일
추모 시기/일시 2008년 10월
출생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린동
거주|이주지 일본 고베
거주|이주지 미국 뉴욕주
학교|수학지 일본 도쿄
학교|수학지 독일 뮌헨
학교|수학지 독일
학교|수학지 독일
활동지 미국 뉴욕주
원어 항목명 Nam June Paik
성격 예술가
성별
정의

미국 뉴욕주 지역에서 활동한 비디오 아트 창시자이자 한인 현대 예술가.

개설

백남준(白南準)[1932~2006]은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세계적인 현대 예술가이다. 일본과 독일에서 공부하였으며, 독일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전위예술운동 집단 ‘플럭서스(Fluxus)’에서 활동하였으며, TV 수상기를 설치하고 비디오 영상을 결합시킨 비디오아트를 선보였다.

활동 사항

백남준은 1932년 7월 20일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린동에서 백낙승과 조종희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중학생 때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으며, 1949년에 아버지를 따라 홍콩에 갔다가 귀국하였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1951년 일본 고베로 이주하였으며, 1952년에 도쿄대학교에 입학하여 미학과 미술사, 음악사를 공부하였다. 1956년에 도쿄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을 떠나 뮌헨대학교와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 쾰른대학교에서 음악사와 작곡 등을 공부하였다. 1958년에 다름슈타트 국제 현대음악 하기 강좌에서 미국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나 영향을 받았고, 쾰른에서 전자음악 연구를 시작하였다. 1959년에 백남준 최초의 해프닝(happening)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를 선보여 전위 예술가로서 주목받았다. 1961년에는 조지 마키우나스, 요제프 보이스 등과 ‘플럭서스’를 결성하여 전위예술운동을 펼쳤다. 1963년 3월 11일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화랑에서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회-전자 텔레비전’을 열어 20세기 비디오아트의 시작을 알렸다.

백남준은 1964년에 뉴욕으로 이주하여 비디오아트를 발전시켜 나갔다. 1965년에 요한 바오로 6세의 뉴욕 방문을 비디오 캠코더로 촬영해 「전자 비디오 레코더」라는 이름으로 상영하였다. 1965년부터 첼리스트 샬롯 무어맨과 「성인만을 위한 첼로 소나타 1번」, 「생상스 주제에 의한 변주곡」, 「오페라 섹스트로닉」 등 충격적인 퍼포먼스로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백남준은 TV 수상기를 설치하고 비디오 영상을 결합시킨 비디오아트를 선보였으며, 상호 소통과 관객 참여에 초점을 두었다. 1963년의 「참여 TV」나 1965년의 「자석 TV」는 관객이 작품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는 비디오테이프 제작과 이를 활용한 설치 작업에 몰두하였다. 대표작으로 「TV 정원」[1974], 「물고기 하늘을 날다」[1975], 「비디오 물고기」[1975] 등이 있다.

1980년대 들어 인공위성을 이용해 텔레비전 생방송을 전 세계에 동시에 내보내는 위성 예술을 선보였다. 1982년 4월에는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회고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1984년 1월 1일 뉴욕과 파리를 연결하고 예술가 100명이 참여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전 세계에 생방송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방향은 비디오테이프에서 위성 예술로 전환하게 되었다. 1986년에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바이바이 키플링」을 발표하였으며,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손에 손잡고」를 제작하였다. 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한 「다다익선」은 TV 수상기 1,003개로 제작한 초대형 조형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92년에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 ‘백남준·비디오 때·비디오 땅’이 열렸으며, 1993년에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참여하여 대상을 수상하였다.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나, 투병 중에도 새 밀레니엄을 맞아 2000년 1월 1일 위성 생방송 「DMZ2000, 호랑이는 살아 있다」를 제작하였다. 같은 해 2월~4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에 「TV 정원」 등의 고전 작품과 「3원소」, 「야곱의 사다리」와 같은 레이저 작품을 새롭게 선보였다. 2006년 1월 29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백남준의 대표적인 전시 작품으로는 「TV 정원」과 「물고기 하늘을 날다」, 「비디오 물고기」, 「TV 시계」[1976], 「다다익선」[1988] 등이 있고, 위성예술로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과 「바이바이 키플링」[1986], 「손에 손잡고」[1988], 「DMZ2000, 호랑이는 살아 있다」[2000]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2000년 10월 금관문화훈장을 수여 받았다. 백남준 사망 후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추모행사와 추모 전시회가 열렸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은 ‘고(故) 백남준 추모 특별전-지상에서 영원으로’를 개최하였다. 2008년 10월에는 백남준아트센터가 경기도 용인에서 개관하였다.

참고문헌
  • 김홍희, 『굿모닝, 미스터 백!』(디자인하우스, 2007)
  • 임산, 『청년, 백남준 초기 예술의 융합 미학』(마로니에북스, 2012)
  • 백남준 외, 『백남준-말에서 크리스토까지』(백남준아트센터, 2018)
  • 김영나,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미진사, 2020)
  • 남정호, 『백남준-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즈칸』(아르테, 2020)
  • 백남준아트센터(https://njp.ggc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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