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Se Seon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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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世璇 |
영문 | Se Seon Kim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뉴욕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02년 7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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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6년 4월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10월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
활동 시기/일시 | 1933년 |
추모 시기/일시 | 2016년 |
출생지 | 강원도 철원군 중리 |
거주|이주지 | 미국 하와이주 |
활동지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
활동지 | 미국 뉴욕주 |
원어 항목명 | Se Seon Kim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북미 대한인유학생총회 부회장 |
일제 강점기 미국 시카고와 뉴욕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세선(金世璇)[1902~?]은 1902년 7월 5일 강원도 철원군 중리에서 출생하였다. 1923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과 재학 시 순회 강연단에 참여하고 베이징[北京]의 한교동지회(韓僑同志會)가 발행하는 불온 신문 『도보(道報)』를 탐독하며 항일 정신을 키웠다. 1925년 와세다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을 결행하여 1926년 4월 하와이에 도착하였다.
1928년 시카고 한인공동회에서 재만동포문제강구회 조직에 참여하여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선전하는 신문 『삼일신보(三一新報)』의 창간 발기인으로 활동하였고, 1928년 10월 창설된 시카고 동지회 총무에 임명되었다. 동지회는 이승만(李承晩)을 총재로 추대하고 이승만의 독립운동 및 노선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단체였다.
1929년 시카고 고려학우회 임원으로 선출된 후 위스콘신주 레이진에서 개최된 동양학생대회에 조선 대표 3명 중 한 명으로 참석하였다. 동양학생대회에서 김세선은 일본 제국주의 횡포를 비판했고,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어떻게 조선 경제를 수탈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1931년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학위 과정 중 잡화 도매 사업을 벌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1930년대 재미 한인 통합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시카고에서 김경(金慶)이 대한인공동회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부임하자, 서기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대한인공동회는 재미 한인 사회의 통일을 목표로 삼았다. 1920년대 침체를 겪은 미주 한인 독립운동의 쇄신을 통해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고 독립운동의 방식을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맞추기 위함이었다.
1932년 한승인이 주도한 잡지 『산업』의 편집에 관여했고 뉴욕 학생회 회장으로 유학생들의 생활 편의를 돌보는 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유학생 사이에서 신망이 높아져 1933년과 1935년에 북미 대한인유학생총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대에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광복군 후원을 주도했고, 뉴욕 동지회 서기로서 활동하였다.
1940년대에는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행보를 보였다. 먼저 조선경제문제연구회에 참여하였다. 조선경제문제연구회는 모스크바삼상회의 이후 광복이 가시화되자 광복 후 한국의 산업 발전을 위해선 미국 및 유수한 실업가들과의 친목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조직된 단체였다. 이러한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워싱턴 정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이승만의 영향력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김세선은 이승만의 주미외교위원부 산하 경제위원회에 참여하였다.
미국 시카고와 뉴욕을 기반으로 유학생회를 적극적으로 단결시키며 1940년대의 독립운동 공적이 인정되어 2016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