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Yik Joon Hwangb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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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皇甫翼駿 |
영문 | Yik Joon Hwangbo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일리노이주 시카고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05년 9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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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3년 7월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4월 |
추모 시기/일시 | 2017년 |
출생지 | 평안남도 용강군 양곡면 정화리 |
활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활동지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
원어 항목명 | Yik Joon Hwangbo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뉴욕지방회 상무위원 |
일제 강점기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황보익준(皇甫翼駿)[1905~?]은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북미 대한인유학생총회(北美大韓人留學生總會), 흥사단 등을 중심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아버지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부회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황보정걸(皇甫正杰)이다.
황보익준은 1905년 9월 27일 평안남도 용강군 양곡면 정화리에서 태어났다. 광성소학교(光成小學校)와 태광학교(太光學校) 및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에서 근대 학문을 접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1923년 남경청년회(南京靑年會)에서 수학하였다. 1924년 2월 15일 난징[南京]에서 흥사단(興士團) 제189단우로 입단하였다. 이후 상하이[上海]에 있는 흥사단 원동위원부(遠東委員部)에서 활동하였다.
1926년 1월 유학을 위해 도미한 후 재미 한인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인국민회의 샌프란시스코지방회에 가입하여 3.1운동 기념회 등을 지원하였다. 1930년 6월 시카고의 노스웨스턴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에 재학하며 중서부 학생회 정기 회의에 참석하였다. 1931년 1월에는 시카고에서 열린 흥사단 중서부대회에 운동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시카고 흥사단 및 대한인국민회의 요직을 두루 거치기 시작하였다.
일례로 1932년 1월부터 흥사단 단우회 총무로 재직하였고, 대한인국민회 시카고지방회 부서기·서기, 시카고 한인유학생회 재무로도 활동하였다. 1932년 5월 12일 안창호(安昌浩)를 비롯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체포된 사건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시카고 한인대회에 참석하였다. 황보익준은 시카고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흥사단 제4반 소속으로 조직을 관리하고 재미 한인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였다. 1933년부터 동양무역회사 사원으로 근무했으며 같은 해 7월 미주 한인 학생이 연합한 북미 대한인유학생총회의 재무로 선출되었다.
1935년 초 뉴욕으로 이주하였다. 같은 해 2월 뉴욕에서 3.1 독립선언 기념일 행사 개최를 위해 대한인국민회를 비롯한 미주 한인 단체들이 한인공동회를 결성할 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독립선언 기념일 개최에 흥사단 대표로 참여하여 준비 위원이 되었다. 1937년 4월 김병학·변일서(邊日曙)와 더불어 대한인국민회 뉴욕지방회 상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7년 12월에 뉴욕 한인연합 중국후원회에 합류하여 상무위원이 되었다. 뉴욕 한인연합 중국후원회는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본격적인 중국과의 연대를 추진하였다. 1938~1939년까지 뉴욕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중국후원회를 지원하였다. 이후 1943년 말부터 1945년 광복 때까지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미주총지부 기관지 『독립』을 후원하였다. 1930~1940년까지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고, 1945년 이후에도 미주를 방문한 한인 교회와 학생들을 원조하였다.
2017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