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진

원어 항목명 Yong Jin Choi
한자 崔龍鎭
영문 Yong Jin Choi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미국 뉴욕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0년 4월 19일
활동 시기/일시 1936년
추모 시기/일시 2011년
활동지 미국 뉴욕주
원어 항목명 Yong Jin Choi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대한인동지회 뉴욕지회 대표
정의

일제 강점기 미국 뉴욕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1922년 도미하여 대한인동지회(大韓人同志會)의 임원으로 참여하여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지원과 한국의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최용진(崔龍鎭)[1900~?]은 1900년 4월 19일 태어났다. 1922년 도미하여 이듬해 9월 대한인동지회 뉴욕지부 회계로 선출되었다. 대한인동지회이승만(李承晩)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추종자들의 총결집을 유도하였다. 최용진대한인동지회에서 활동을 하던 중 1928년에 이승만·서재필(徐載弼)이 고문을 맡고 홍득수(洪得秀)·허정(許政)·김양수(金良洙) 등이 참여한 『삼일신보(三一新報)』 발기인으로도 참여하였다.

1930년 광주학생항일운동 소식이 미주 한인들에게 전달되었다. 1930년 1월 26일 뉴욕 한인교회에서 개최한 뉴욕학생회 제1차 회의를 통해 본국 학생 지원을 위한 ‘뉴욕 동포내지운동대책강구회’가 조직되었다. 최용진은 모임에서 기부금을 납부하고 이후로는 동지회 대표로서 전면적인 활동에 나섰다. 1936년부터 대한인동지회 뉴욕지회 대표로 활동하였다. 당시 대한인동지회의 미주 지회는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에 포진되어 있었다. 최용진은 명실상부한 대한인동지회 뉴욕지회의 임원으로서 이승만의 노선에 입각한 운동에 참여하였다.

1942년 3월 1일 기념식에 발맞춰 대한인자유대회가 개최되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한미협회 대표자들이 공동으로 본국 및 중국 만주에 산재한 애국지사들을 전력으로 원조 봉대할 것을 천명하였다. 최용진동지회 일원으로 참여해 안건에 결의하였다. 1944년부터는 워싱턴을 중심으로 한 이승만의 외교 활동을 지원하였다. 1944년 한국외교위원부 경제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한국외교위원부 내에 뉴욕, 워싱턴, 디트로이트, 시카고의 인사들을 통합하기 위해 협찬부를 조직할 때 협찬원으로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1920년대부터 대한인동지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공적이 인정되어 2011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신한민보』(1922. 8. 10., 1930. 2. 6., 1936. 3. 5., 1944. 6. 15., 1944. 6. 29.)
  • 『북미시보』(1944. 6. 1.)
  • 「사상휘보」(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8)
  • 「연희전문학교 동지회 흥업구락부 관계 보고(국사편찬위원회)-민족 혁명을 목적으로 하는 동지회(비밀결사 흥업구락부) 사건 검거에 관한 건」(1938.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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