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Jin Ju Cha |
---|---|
한자 | 車眞宙 |
영문 | Jin Ju Cha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뉴욕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04년 2월 22일 |
---|---|
수학 시기/일시 | 1931년 6월 |
수학 시기/일시 | 1932년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11월 1일 |
추모 시기/일시 | 2013년 |
출생지 | 평안남도 의주 고성 |
활동지 | 미국 뉴욕주 |
원어 항목명 | Jin Ju Cha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뉴욕지방회 서기 겸 사교 위원 |
일제 강점기 미국 뉴욕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부인은 윤성덕(尹誠德)이다.
차진주는 1904년 2월 22일 평안남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1926년 6월 8일 유학을 목적으로 미국에 도착한 후 휴론대학[1927년 9월~1931년 6월]과 미네소타대학교[1932년~1933년]에서 공부하였다. 뉴욕에 거주하며 대한인국민회에 가입했고, 1939년 11월 12일 대한인국민회 뉴욕지방회가 1940년도 새 임원을 선출할 때 재무로 선임되어 광복군 후원금 모금 활동을 펼쳤다.
1940년 3월 28일 『신한민보』의 새 식자 기계 구입을 위해 정경희·안정수(安鼎洙)·전창수 등과 함께 권연문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1940년 4월 7일 음악으로 친목과 지식을 장려하기 위해 뉴욕에서 처음으로 한인음악구락부를 뉴욕 한인교회에서 조직하고 후원하는 데 앞장섰다. 한인음악구락부의 결성 배경에는 국내 이화전문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다 도미한 차진주의 부인 윤성덕(尹誠德)의 연주 활동을 돕는 것이기도 하였다. 1940년 5월 19일 처음으로 뉴욕 한인교회에서 연주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1941년 대한인국민회 뉴욕지방회 서기 겸 사교 위원이 되어 허진업(許眞業)의 추도식을 거행하며 독립금을 모금하였다. 미일전쟁 발발 직후인 1941년 12월 18일 뉴욕 한인들이 비상시국대회를 개최하고 뉴욕 한인연합회를 결성하자 전임 재무 박리근의 후임으로 재무가 되었다. 1942년 7월 2일 뉴욕 한인연합회 주최로 뉴욕 한인교회에서 시국 강연회를 개최할 때 재미 한인들의 대동단결과 물질과 희생으로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도울 것을 주창하였다.
1944년 11월 1일 미국 육군에 입대한 뒤 공작 훈련[Field Experimental Unit, FEU]에 배속된 직후 미국 전략첩보국이 비밀리에 계획한 한반도 침투 작전인 냅코프로젝트에 차출되어 1945년 2월 2일~9월 5일까지 특무 공작 훈련을 받았다. 냅코프로젝트 때 ‘아이넥조[Einec Mission]’에 편성되어 조장 유일한(柳一韓)을 비롯해 이초(李超)·변일서(邊日曙)·이종흥 등과 함께 훈련하며 장차 서울 침투를 계획했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작전을 수행하지 못하고 같은 해 9월 13일 제대하였다.
2013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