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Jong Mun J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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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鍾文 |
영문 | Jong Mun Jo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미국 미시간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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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7년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출생지 | 서울특별시 마포구 |
거주|이주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거주|이주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거주|이주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들리 |
활동지 | 미국 미시간주 시카고 |
활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
원어 항목명 | Jong Mun Jo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리들리지방회 서기 |
일제 강점기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와 캘리포니아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종문은 1892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났다. 인천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뒤 유학을 목적으로 1913년 9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한 뒤 시카고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1917년 2월 16일 시카고 임시지방회장 정원현과 함께 대한인국민회 시카고지방회 설립을 청원해 인준을 받고 대한인국민회 시카고지방회 실업부원이 되었다. 1920년 6월 유럽에서 국제연맹을 상대로 외교 활동을 벌인 조소앙(趙素昻)을 평민 대표로 간주해 후원한 것을 비롯해 내지 한재 의연, 광복군 의연금을 거두고 한인 양로원 등을 지원하였다.
1939년 3월경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리들리로 이사한 뒤 1940년 대한인국민회 리들리지방회에서 서기로, 1941년~1942년 리들리지방회와 다뉴바지방회에서 실업위원과 서기로 활동하였다. 1941년과 1942년에는 중가주지방회를 대표해 대한인국민회 전체 대표 대회에 참석하였다.
1942년 주미외교위원부 개조를 둘러싸고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측 김호(金乎)·전경무(田耕武)와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이승만(李承晩) 간에 충돌이 일어나자 같은 해 12월 30일 다뉴바에서 북미민중대회를 개최하고 민중위원회[위원장 박호근]를 조직해 서기가 되어 이승만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였다. 이후 1943년 3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상무부로부터 민중을 선동해 국민회 노선에 반기를 들었다 하여 이살음(李蕯音)·송태은·신종호(申宗浩)·류도보와 함께 임원 면직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1944년도 대한인국민회 다뉴바지방회에서 교육위원으로 봉직하였다. 광복 전후 대한인국민회를 떠나 1959년 동지회 북미총회 총무로, 1961년에는 동지회 중가주지방회 총무 등으로 활동하였다.
2015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