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원어 항목명 Bo Rah Chung
한자 鄭保羅
영문 Bo Rah Chung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인물(세계)/인물(일반)
지역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수학 시기/일시 1932년
수학 시기/일시 1937년
수학 시기/일시 1949년 6월
수학 시기/일시 1959년
활동 시기/일시 1937년
활동 시기/일시 1938년 9월
활동 시기/일시 1945년
활동 시기/일시 1945년 12월
활동 시기/일시 1946년 10월 22일
활동 시기/일시 1948년 8월
활동 시기/일시 1963년 1월
활동 시기/일시 1965년
활동 시기/일시 1966년 4월
활동 시기/일시 1968년 3월
출생지 함경남도 함흥시
거주|이주지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학교|수학지 서울특별시
학교|수학지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학교|수학지 일본 오카야마현
활동지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활동지 서울특별시
원어 항목명 Bo Rah Chung
성격 치과의사
성별
대표 경력 시카고 한인회 초대 회장|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보철부 교수|시카고 명예총영사관 초대 명예총영사
정의

일제 강점기 미국에서 공부하고, 시카고 한인회 초대 회장과 초대 명예총영사를 역임한 한인 치과의사.

개설

정보라(鄭保羅)[?~?]는 1932년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병원 치과에서 근무하였다. 1937년에 미국 유학을 떠나 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미국 치과의사 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1945년 11월에 개교한 경성치과대학에서 보철부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46년 10월에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보철부 교수로 재직하였다. 1949년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치의학 석사학위를, 1959년 일본 오카야마대학교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3년에 시카고 한인회 초대 회장을, 1965년에는 시카고 한인회 제3대 회장을 지냈으며,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시카고 명예총영사관 초대 명예총영사를 역임하였다.

활동 사항

정보라는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1932년에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병원 치과에서 근무하였다.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재학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하였으며, 1920~1930년대 피겨스케이팅 선수로서 여러 빙상경기 대회에 출전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한성치과의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각종 신문에 「전신의 건강은 우선 치아로부터」, 「건강하고 명 길려면 치아를 튼튼히」, 「모체와 치아 위생」 등 치아와 구강위생에 대한 글을 여럿 실었다. 1937년 9월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교에 유학하여 미국 치과의사 학위를 받았고, 맥코믹신학교에서 과목을 수강하기도 하였다. 유학 기간에 시카고의 한인 학생회 활동을 하며 ‘한국의 밤’ 행사에서 한국을 알리고, 안익태 작곡 「애국가」를 불렀다. 1938년 9월 귀국길에 종로경찰서에 끌려가 미국 체류 시 활동에 대해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1945년 9월 미군정이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경성치과대학이사회에 참여하여 같은 해 11월에 개교한 경성치과대학의 보철부 교수로 근무하였다. 미군정청 보건후생국 고문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12월 창립된 조선치과의사회의 보건 및 학술 위원을 맡았다. 1946년 ‘국대안 파동’ 속에서 경성치과대학을 서울대학교로 병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46년 10월 22일부터 1952년 2월 29일까지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보철부 교수로 재직하였다. 1948년 8월 미국으로 건너가 1949년 6월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치의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59년에는 일본 오카야마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미 이후 노스웨스턴대학교와 일리노이주립대학교 치과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였고, 대한치과보철학회 명예 회장을 역임하였다.

1963년 1월 시카고 한인회가 창립될 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 시카고 네이비 피어(Navy Pier)에서 개최된 국제민속제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한국과 한인회를 알렸다. 1965년에는 시카고 한인회의 제3대 회장을 맡았다. 1966년 4월에는 시카고 명예총영사관[한국 명예총영사관으로 1966년 8월 15일 개관] 초대 명예총영사로 임명되어 1968년 5월까지 직책을 수행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구개완형강과 총의치 유지」[『대한치과의사협회지』7-1, 대한치과의사협회, 1969]가 있다.

상훈과 추모

주시카고 명예총영사로서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1968년 3월 2등 수교훈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 『개교80주년기념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사-1922~2001』2(서울대학교 치과대학사 편찬위원회, 2002)
  • 신재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참윤, 2005)
  • Kyu Young Park, 『Korean Americans in Chicago-Images of America』(Arcadia Publishing, 2003)
  • 「미국귀래선인(美國歸來鮮人) 취조(取調)의 건(件)」(『사상(思想)에 관(關)한 정보(情報)』11,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문서, 1938. 10. 3.)
  • 총무처 의정국 의정과, 「영예수여(주시카고 명예총영사관 명예총영사 정보라)」(국가기록원 소장, 관리번호 BA0084533, 1968. 3. 14.)
  • 「의학박사학위 취득자 일람」(『대한치과의사협회지』18-4, 대한치과의사협회, 1980)
  • 「학술분야 소식」(『대한치과의사협회지』21-6, 대한치과의사협회, 1983)
  • 이주연, 「한국 치과의사사회의 전문직 위상확립 과정에 관한 근대사적 고찰」(연세대학교 치의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2)
  • 신재의, 「큰 스승 박명진(朴明鎭)」(『대한치과의사협회지』49-11, 대한치과의사협회, 2011)
  • 「정보라 1·2」(『시카고 제일 한인 연합 감리교회 70년사 편찬을 위한 구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 『동아일보』(1932. 6. 5.|1933. 6. 3.|1934. 2. 27.|1966. 8. 12.)
  • 『조선일보』(1934. 10. 10.|1938. 9. 9.|1938. 9. 30.|1938. 12. 6.|1939. 5. 5.|1966. 3. 30.)
  • 「시카고 한인 이민사: 초기 인맥을 찾아서(한인이민 100주년 기념 이민사 발굴 시리즈)」(『재외동포신문』, 2004. 10. 23.)
  • 국가기록원(https://www.archives.go.kr)
  •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http://archive.history.go.kr)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 재외동포신문(http://www.dongpo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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