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직

원어 항목명 Byung Jick Yim
한자 林炳稷
영문 Byung Jick Yim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3년 10월 26일
수학 시기/일시 1908년
활동 시기/일시 1918년 12월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4일
활동 시기/일시 1923년 6월
활동 시기/일시 1943년
활동 시기/일시 1945년 10월
활동 시기/일시 1949년
활동 시기/일시 1951년 11월
몰년 시기/일시 1976년 9월 21일
추모 시기/일시 1976년
추모 시기/일시 1978년 11월 19일
출생지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응평리
학교|수학지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활동지 미국
묘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산41-2]
원어 항목명 Byung Jick Yim
성격 독립운동가|정치인|외교관
성별
대표 경력 북미 대한인유학생총회 영업부장|『북미시보』 영문 주필
정의

일제 강점기 미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임병직(林炳稷)[1893~1976]은 재미 대한인유학생연맹, 제1차 한인회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주미외교위원부, 대한인동지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펼쳤고, 정부 수립 이후 외무부 장관, 주유엔 대사, 한일 회담 수석대표 등을 지냈다.

가계

호는 소죽(小竹). 아버지는 임연상(林淵相), 어머니는 달성 서씨(達城徐氏)이다.

활동 사항

임병직은 1893년 10월 26일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응평리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직후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재미 대한인유학생연맹을 발기할 때 서기로 활동하며 1919년 3월부터 5월까지 영문 잡지 발간을 주관하였다. 서재필(徐載弼), 이승만(李承晩), 정한경(鄭翰景)의 주관으로 1919년 4월 14일부터 4월 16일까지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회의가 개최될 때 학생 대표의 일원으로 참가해 서기로 대회 행사를 이끌었다. 이승만의 요청으로 구미위원부의 위원으로 선전 외교 활동에 나서 워싱턴회의 때 워싱턴회의 한국대표단의 선전 외교 활동을 도왔다. 1923년 6월 북미 대한인유학생총회의 영업부장으로 출판분과위원회를 맡아 이끌었고 1942년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집행부 선전과 위원이 되어 로스앤젤레스 한인경위대의 활동을 도왔고 샌프란시스코 한인경위대의 창설을 주도하였다.

이승만이 임시정부의 인준을 받아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이 되자 1942년 9월 이승만에 의해 ‘무관보[military attaché, 계급 대령]’로 임명되었고, 이때부터 ‘커널 림(colonel Limb)’이라는 호칭이 붙여졌다. 이승만을 도와 미국 전략첩보국[OSS]을 통해 미주 한인들을 비밀리에 모집하여 특수 훈련을 받는 활동을 펼쳤다.

1943년 동지회 북미총회가 발간하는 『북미시보』의 영문 주필이 되었고 1944년 9월 15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국제연합구제부흥기관[UNRRA]이 주관한 국제회의에 한인 대표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이때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한국 내지와 원동 각처에 계신 동포 여러분’이라는 메시지를 보내 한국의 독립운동을 응원하였다. 1945년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엔창립대회를 개최하자 임시정부의 훈령을 받아 이승만과 함께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선전 외교 활동을 펼쳤다.

광복 직후 이승만이 귀국하자 1945년 10월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이 되어 미국 정부와 의회, 그리고 국제연합[UN]을 상대로 미군정 관할하에 놓인 남한에 이승만을 수반으로 한 자유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외교 활동을 펼쳤다. 1949년 1월 귀국한 직후 대한민국 외무부의 제1대 외무부 장관이 되었다. 1951년 11월부터 1960년 9월까지 주유엔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를 지내며 신생 대한민국의 국제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58년에는 한일 회담 수석대표로서 국교 재개를 위한 외교 활동을 펼쳤다. 1976년 9월 21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는 『임병직 회고록』[여원사, 1964]이 있다. 1998년 외교부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임정에서 인도까지–임병직 장관 회고록』이라는 제목으로도 발간되었다.

묘소

임병직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산41-2]의 국립서울현충원[제2 유공자 묘역-6]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6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1978년 11월 19일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응평리에 임병직 박사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 임병직, 『임병직 회고록』(여원사, 1964)
  • 『신한민보(新韓民報) 영인본』(아세아문화사, 1981)
  • 외교통상부 편, 『임정에서 인도까지–임병직 장관 회고록』(외교안보연구원, 1998)
  • 홍선표, 『자주독립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재미 한인의 꿈과 도전』(연세대학교출판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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