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Hee Kyung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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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喜敬 |
영문 | Hee Kyung Le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1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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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12년 5월 31일 |
몰년 시기/일시 | 1947년 6월 26일 |
추모 시기/일시 | 2002년 |
출생지 | 대구광역시 |
거주|이주지 | 미국 하와이주 |
학교|수학지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
묘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 23-1] |
원어 항목명 | Hee Kyung Lee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전후한국구제회 회계 |
일제 강점기 미국 하와이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희경(李喜敬)[1894~1947]은 대한민국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 영남부인실업동맹회, 대한부인구제회(大韓婦人救濟會),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에서 각종 독립 자금을 의연하거나 모금 활동을 펼쳐 한국 독립을 도운 인물이다.
아버지는 이종하(李淙夏)이며 어머니는 김정원(金正元)이다. 2남 2녀 중 차녀이다.
이희경은 1894년 1월 8일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출생하였다. 1912년 대구 신명여학교[현 신명고등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였고 같은 해 10월 2일 권도인(權道仁)의 사진 신부로 하와이로 가서 호놀룰루에서 가구점 사업을 하였다. 1918년 말 첫째 딸 정숙[마가렛]을 데리고 6년 만에 잠시 귀국하여 한국에 있는 동안 3.1운동을 직접 목도하였다. 오현주(吳玄洲)·김마리아 등이 서울에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대구에 지부를 설치하자 유인경(兪仁卿)에 이어 지부장이 되어 독립 자금을 모집하며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펼쳐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가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1920년 10월 하와이로 돌아가 대한부인구제회에서 독립 자금 모집 활동과 적십자대 훈련, 선전 외교 후원 활동을 펼쳤다.
1928년 9월 27일 호놀룰루에서 박금우·김보배·곽명숙·박정숙·이양순 등과 영남부인회를 결성했고 1930년 영남부인회에서 이름을 변경한 영남부인실업동맹회에서 조국 독립을 위한 실업(實業) 발전에 나섰다. 또 대한부인구제회 호놀룰루지방회에서 법무이자 중앙부 사교원으로 활동하였다. 1941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에서 독립금 수봉 위원과 조사부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가구점으로 번 돈 1만 달러 정도를 광복군 후원금, 구제금, 독립금, 군사 운동금 등으로 지원하였다. 1946년 2월 호놀룰루에서 결성한 전후한국구제회에서 회계로 활동하며 광복된 한국 국민의 경제생활을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7년 6월 26일 하와이 호놀룰루 시내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이희경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 23-1]의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2002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