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Jin Il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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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進日 |
영문 | Jin Il Le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콜로라도주 뉴욕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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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4년 11월 18일 |
활동 시기/일시 | 1934년 9월 15일 |
추모 시기/일시 | 2014년 |
출생지 | 경상남도 양산 |
거주|이주지 | 미국 하와이주 |
거주|이주지 |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
거주|이주지 | 미국 뉴욕주 |
활동지 | 미국 뉴욕주 |
원어 항목명 | Jin Il Lee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뉴욕 동지회 총무 |
일제 강점기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진일은 1881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났다. 1904년 11월 18일 노동 이민으로 하와이에 도착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미국 본토로 이거해 1907~1908년경부터 콜로라도주 덴버에 거주하였다. 1910년 11월 대한인국민회에 가입하였고 덴버대학교 예비과에 들어가 1914년 6월에 졸업하였다. 3.1운동 전후 시기 뉴욕으로 이거해 동양물산회사를 세우고 사업을 크게 번창시켰다. 1921년 뉴욕 한인교회를 창립하여 교회의 주요 임원과 이사원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1월 뉴욕에서 대광(大光)이란 단체를 설립한 바 있고, 1924년 12월 뉴욕에서 뉴욕 한인교민단을 설립한 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뉴욕 한인교민단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1933년 3월 김규식(金奎植)의 도미로 미국 전역에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가입 바람이 일어날 때 같은 해 6월 18일 뉴욕의 대한인국민회, 동지회, 교민단의 세 단체와 연합하여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뉴욕지부를 결성하고 집행 위원 5명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1933년 6월 24일에는 뉴욕 거류 중국인들과 연합하여 중한민중대동맹 뉴욕지부를 결성하고 상무위원에 임명되었다. 1934년 9월 15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장 송병조(宋秉祚)의 명의로 재무부 주미 제5행서 비서에 임명되었다. 중일전쟁 발발 직후 중국의 항일 전쟁을 돕기 위한 방편으로 1937년 9월 12일 뉴욕 한인연합 중국후원회를 결성한 뒤 총무로 활동했고 1939년 4월 이를 발전시킨 뉴욕 조선의용대후원회에서도 총무로 활동하였다.
1930년대 중반 교민단이 없어진 이후 뉴욕 동지회에 들어간 뒤 1941년 2월 뉴욕 동지회 총무로 뉴욕 한인 단체들 간의 합작 노력을 펼쳤다. 이런 노력을 계기로 미일전쟁 발발 직후인 1941년 12월 18일 뉴욕 한인들과 비상 대회를 개최하고 뉴욕 한인연합회를 결성하였다. 뉴욕 한인연합회가 결성될 때 7명의 위원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어 미국의 대일 항전을 도우며 한국 독립운동을 펼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4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