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Oliver R. Avi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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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Oliver R. Avis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캐나다 온타리오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60년 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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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3년 |
활동 시기/일시 | 1904년 |
활동 시기/일시 | 1917년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12월 |
활동 시기/일시 | 1942년 10월 |
활동 시기/일시 | 1952년 |
몰년 시기/일시 | 1956년 8월 29일 |
출생지 | 영국 요크셔주 웨스트라이이딩 재거그린 |
거주|이주지 | 캐나다 온타리오주 |
거주|이주지 | 서울특별시 |
거주|이주지 | 미국 |
활동지 | 서울특별시 |
원어 항목명 | Oliver R. Avison |
성격 | 의료 선교사|교육자|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제중원 원장|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
일제 강점기 한국에서 의료 선교와 의학 교육에 헌신하면서 한국 독립을 적극 지지한 영국 출신의 캐나다 의사이자 교육자, 독립운동가.
올리버 알 애비슨(Oliver R. Avison)[1860~1956]은 제중원(濟衆院)과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연희전문학교에서 의사이자 교육자로 활동했고 3.1운동을 비롯해 한국기독교인친한회를 통해 한국 독립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한 인물이다.
올리버 알 애비슨은 1860년 6월 30일 영국 요크셔주 허더즈필드에서 태어났다. 1866년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 온타리오로 이주하였다. 1887년 토론토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87년 7월부터 1893년까지 토론토대학교 의학부 교수로 재직하였다. 1893년 토론토대학교 의학부 교수로 재임용되었으나 포기하고 같은 해 7월 의료 선교를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11월 왕립 병원인 제중원(濟衆院)의 원장을 맡게 되었다. 1894년 4월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부에서 제중원 운영권을 인수한 후 1899년 4월부터 의학교육을 병행하였다. 1900년 미국의 사업가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Louis Henry Severance)가 거액을 기부하여 1904년 2월 서울 남대문 밖에 초교파의 세브란스병원을 신축하자 병원장과 세브란스의학교 교장을 겸직하며 1908년 처음으로 한국인 의사 7명을 배출하였다.
1915~1916년 경신학교 대학부 부교장 및 교장으로 활동했고, 1917년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가 조선총독부의 설립인가를 받자 1934년까지 두 학교의 교장으로 근무하며 신진 지식을 가진 한국인 청년들을 길렀다. 1919년 3.1운동 때 일본의 가혹한 식민지정책을 비판하며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지하였다. 1934년 3월 교장직에서 물러나 명예 교장에 추대되었고 선교사직에서 은퇴하여 1935년 12월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李承晩)의 요청으로 1942년 10월부터 1945년 광복 때까지 한국기독교인친한회[회장 폴 F. 더글러스(Paul F. Douglass) 아메리칸대학교 총장]의 총무 겸 재무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과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6년 8월 29일 미국 플로리다주 피츠버그에서 사망하였다.
195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