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Ho Min 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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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Ho Min Ya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7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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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41년 11월 11일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거주|이주지 | 미국 하와이주 |
활동지 | 미국 하와이주 |
원어 항목명 | Ho Min Yang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소관 위원 |
일제 강점기 미국 하와이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양호민[1877~1941]은 1909년 미국 하와이주의 대한인국민회 가익기지방회 재무 및 구제원에 임명되어 한인 사회 재정 안정에 힘을 보탰다. 1910년 하와이주 오아후섬의 와히아와로 이주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와히아와지방회 재무에 선임되었다. 이후 1920년대의 구체적인 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1934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는 한인 사회 통합을 위해 조직을 재정비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임원진은 조직 정비 과정에서 상당한 부채를 확인하였다. 부채 문제를 해소하여 통합된 조직을 구성하고자 총회를 개최하였다. 당 회의에서 기존 채권자의 채금을 본회 기본금으로 전환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를 재단법인으로 설립하자는 안건이 상정되었다. 법인 설립 시 요구되는 기본금이 2,500원에 달하였다. 이에 따라 채권자들이 연합하여 본인들의 채권 금액을 기본금으로 이전하여 단체의 안정을 위해 기여하였다. 양호민은 이때 500원이란 금액을 기부하여 대한인국민회의 재정 안정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36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담당하는 소관 위원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중일전쟁 및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인구세·애국금·혈성금·부인구제회 지원금 등의 지원금을 성실하게 납부하였다. 1940년 이후 한국독립당 하와이지부에서 활동하였다.
양호민은 1941년 11월 11일 사망하였다. ‘한국독립당 하와이지부 제4주년 연례대회 회의록’에서 사망[1941. 11. 11.]이 확인된다. 사망 이후 『국민보』[1942. 2. 11.]에서 “본인의 유산 중 250원을 광복군 후원금으로 사용해 달라.”는 유언이 확인된다. 양호민의 유산은 1944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재정[『국민보』, 1944. 1. 12.]에 포함되어 독립군 지원에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1910년대부터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활동과 일생에 걸친 독립 의연금 납부와 광복군 지원 등의 공로가 인정되어 2011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