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Archibald Harrison Bark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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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Archibald Harrison Bark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몰년 시기/일시 | 192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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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68년 |
출생지 | 캐나다 |
활동지 | 함경북도 성진, 회령 |
활동지 | 중국 길림성 |
원어 항목명 | Archibald Harrison Barke |
성격 | 선교사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간도참변을 세계에 알린 캐나다의 장로회 선교사.
아치볼드 해리슨 바커(Archibald Harrison Barke)[?~1927]는 한국인의 간도 이주 및 정착 생활과 함께하며 3.1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한인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을 국내외에 알린 조력자였다.
한국식 이름은 박걸(朴傑)이다.
아치볼드 해리슨 바커는 캐나다 출생으로 녹스대학과 토론토대학을 졸업하였다. 1911년 2월 캐나다 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함경북도 성진(城津)에 부임하였다. 1912년 5월 회령(會寧)을 거쳐 1913년 5월 간도 용정촌(龍井村)에서 선교를 시작하였고, 국권피탈 이후 간도로 이주해 온 한인들을 보호하며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이주 한인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은진학교(恩眞學校)와 명신여자중학교(明信女子中學校)를 설립하고, 제창병원(濟昌病院)을 운영하며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로 제공하는 등 종교·의료·교육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간도 한인들을 지원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기운이 간도까지 확대되던 중 2월에 영신학교(永信學校)를 설립했던 강봉우(姜鳳羽)가 만세운동을 제안하자 적극 찬성하고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 결과 1919년 3월 13일 북간도 용정촌에서 간도 지역 최초의 3.1운동이 일어났고, 일제와 중국군의 탄압으로 17명의 순국자와 30여 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하였다. 아치볼드 해리슨 바커는 부상자들을 제창병원에 수용하여 치료하며 간호했고, 간도 지역 3.1운동 참여자와 구금자들의 상세한 신원과 사진 등을 서울 주재 영국 총영사에게 보고하였다. 1919년 6월 25일에는 원산에서 개최된 캐나다 장로회 한국선교부 연례 회의에 참석하여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항의서를 조선 총독에게 발송하였다.
한편 일제는 1919년 3.1운동과 독립군 조직 등의 독립운동 움직임을 우려하여 1920년 10월에 간도참변을 일으켰다. 이에 아치볼드 해리슨 바커는 1920년 12월 20일에 국자가(局子街) 지역 중국 관헌을 방문하여 일본 출병에 대한 대책과 독립운동가 김약연(金躍淵)의 신변 보호를 요구하였다. 1921년 2월 초에는 캐나다 선교사들과 함께 혼춘(琿春)·용정(龍井) 방면 한인들의 피해 상황을 조사하여 국내외 여론에 알렸다. 1923년 건강 문제로 안식년을 얻어 캐나다로 귀국했고, 1927년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사망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