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Sang Geun S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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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相根 |
영문 | Sang Geun Si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호놀롤루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0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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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8년 |
수학 시기/일시 | 1933년 |
추모 시기/일시 | 2014년 |
거주|이주지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
거주|이주지 | 미국 워싱턴 D.C. |
학교|수학지 | 미국 콜로라도주 |
활동지 | 미국 하와이주 |
활동지 | 미국 오하이오주 애슐랜드 |
원어 항목명 | Sang Geun Sin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미국 하와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신상근(申相根)[1905~?]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 및 한미협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신상근은 1905년 출생하였다. 1916년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에서 이승만(李承晩)의 활동을 도왔다. 1924년 하와이 학생연합회 선거에서 사찰로 선출되었고, 1928년 콜로라도대학교 의학과에 입학하였다. 1933년 의학박사를 딴 후 하와이 호놀롤루에서 의사로 활동하였다. 1942년 하와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 운동을 위해 한 순회 연설이 하와이 한인들에게 큰 호응을 일으켰다. 이후 워싱턴으로 이주하여 이승만이 주도한 한미협회에서 활동하였다.
한미협회에서 루스벨트(Roosevelt)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내 “3,000만의 한인들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도록 마음을 먹고 있고 태평양전쟁에서 부정할 수 없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합법적인 공식 승인으로 연합국 태평양 사령부가 전략 계획에서 한국의 역할을 인정한다면 최소 10만의 유격대가 무기대여법(武器貸與法)을 통해 대일 전쟁의 선봉에 서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1944년 1월 21일 오하이오주 애슐랜드로 건너가 한국독립승인대회를 열어 ‘미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할 것’을 다시금 요청하였다.
다시 빌트모어에서 열린 타운홀 회의에서 “한국은 러일전쟁 이후 일본 지배에 40년을 저항하였다. 그리고 중국군도 함께 움직이며 한국은 지리적으로 일본에 근접하여 있어 폭격 기지를 위한 이상적인 지역이다.”라고 발언하였다. 신상근은 한미협회에서 정부 승인 및 미국의 무기 대여를 촉구하며 주미외교위원부의 경제위원회 위원으로도 임명되었다. 광복 직전인 1945년 7월에는 제1회 동지회 미포대회에 북캘리포니아 지방 대표 대리로 참석하고 시국선후대책위원 9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한미협회에서의 지속적인 대일 선전 및 정부 승인 운동이 인정되어 2014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