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Nam Su Ba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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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南秀 |
영문 | Nam Su Bak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인물(세계)/예술인 |
지역 | 미국 뉴저지주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18년 5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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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7년 |
수학 시기/일시 | 1940년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 |
활동 시기/일시 | 1951년 |
활동 시기/일시 | 1951년 |
활동 시기/일시 | 1954년 |
활동 시기/일시 | 1957년 |
활동 시기/일시 | 1957년 |
활동 시기/일시 | 1958년 |
활동 시기/일시 | 1959년 |
활동 시기/일시 | 1964년 |
활동 시기/일시 | 1970년 |
활동 시기/일시 | 1975년 4월 |
활동 시기/일시 | 1981년 |
활동 시기/일시 | 1992년 |
활동 시기/일시 | 1992년 |
활동 시기/일시 | 1993년 |
몰년 시기/일시 | 1994년 9월 17일 |
출생지 | 평안남도 평양시 진향리 |
거주|이주지 | 미국 플로리다주 |
거주|이주지 | 미국 뉴저지주 |
학교|수학지 | 일본 도쿄 주오대학 |
원어 항목명 | Nam Su Bak |
성격 | 시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사상계』 상임 편집위원 |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생활의 다양한 경험을 새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인.
박남수(朴南秀)[1918~1994]는 1918년 5월 3일 평안남도 평양시 진향리에서 태어났다. 1937년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 도쿄 주오대학[中央大學]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고 1940년 졸업하였다. 조선으로 돌아와 1945년부터 조선식산은행 진남포지점에서 은행원으로 생활하였다. 1948년 한국식산은행 평양지점장을 사임하였다.
일본 유학 전부터 희곡 「기생촌(妓生村)」이 『조선문단』에 당선되는 등 문학적 재능을 보였으며 정지용(鄭芝溶)의 추천을 받아 『문장(文章)』에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詩作) 활동을 시작하였다. 분단 이후 조선문학예술총연맹의 문예 정책에 비해서 순수시 세계를 추구하였으며 1951년 1.4후퇴 때 월남하여 한국 사회에 정착하였다. 1951년 『주간문학예술』을 창간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꾸준히 시작 활동에 몰두하였다. 1957년 한국시인협회를 창립하였다. 1954년 『문학예술』 편집위원, 1959년 『사상계』에서 상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에 두고 온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의식은 끊임없이 박남수의 심상을 흔드는 원초적 고통으로 작용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뚜렷이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 가다가 1975년 4월 가족이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로 이주하였다. 이후 디아스포라(Diaspora) 이주민의 현실과 정체성에 관한 시를 발표하였다. 1994년 9월 17일 뉴저지주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시집으로는 1940년 『초롱불』[삼문사], 월남 이후 1958년 『갈매기 소묘(素描)』[춘조사], 1964년 『신(神)의 쓰레기』[모음사], 1970년 『새의 암장(暗葬)』[문원사] 등을 냈다. 미국으로 이주한 직후에는 시작 활동이 없다가 1981년 『사슴의 관(冠)』[문학세계사], 1992년 『서쪽 그 실은 동쪽』[인문당], 1993년 『그리고 그 이후(以後)』[문학수첩] 등의 시집을 냈다.
1958년 제5회 아시아 자유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92년 공초 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