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Yoon Bae Kim |
---|---|
한자 | 金潤培 |
영문 | Yoon Bae Kim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일 |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1926년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추모 시기/일시 | 1997년 |
활동지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
원어 항목명 | Yoon Bae Kim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미국 하와이를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윤배(金潤培)는 대조선독립단(大朝鮮獨立團)과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하와이지방총회를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하며 한국 독립을 도운 인물이다.
김윤배는 1918년 1월부터 일어난 대한인국민회의 재정권 남용을 둘러싼 하와이 한인 사회 분쟁의 결과 박용만(朴容萬)의 주도로 1919년 3월 3일 호놀룰루에서 대조선독립단을 결성할 때 총단장 신홍균(申洪均)과 함께 총무로 선임되었다. 이후 1924년부터 1926년까지 대조선독립단 총단장으로 활동하며 중단되었던 『태평양시사』를 재발간하였고 기존 장정을 수정 보완해 절대 독립을 바탕으로 한 항일 군사 운동을 대조선독립단의 주요 목표로 설정하였다.
1925년 4월 1일 대조선독립단 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호놀룰루에 임시정부 후원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하자 적극 동참하였다. 김구(金九)는 『백범일지』에서 김윤배를 비롯한 하와이 한인들의 재정 후원에 특별히 감사 표시를 하였다. 1926년과 1927년 중국 관내와 만주에서 민족유일당운동(民族唯一黨運動)을 펼치고 국내에서 민족 협동전선의 일환으로 신간회(新幹會)를 결성하는 등 민족 역량을 결집하고 통합하려는 노력을 펼치자 1928년 3월 호놀룰루에서 대한민족통일촉성회(大韓民族統一促成會)를 결성하였다. 이때 29명 발기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선전부 위원으로 한인 사회의 통합 운동을 펼쳤다.
1930년 1월 국내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소식이 하와이에 전해진 후 “민족주의에 기초한 대한 독립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한인협회를 결성할 때 위원장 조용하(趙鏞夏)와 함께 재무로 참여해 『한인협회공보』를 발간하는 등 한인 단체들의 통일을 추진하였다. 1932년 1월 하와이 대한인교민단의 재정 장부 문제를 둘러싸고 동지회와 교민단 간의 분쟁이 폭발한 후 1933년 2월 1일 하와이 대한인교민단이 대한인국민회로 복설되자 1934년도 총회장에 선임되었다. 총회장으로서 채무 탕감 활동을 펼쳐 재정 위기에 빠진 대한인국민회를 다시 일으켰고 1934년 10월 기존의 대조선독립단과 대한인국민회 간의 합동을 성사시켜 대한인국민회의 위상을 제고하였다.
1934년 9월과 10월 대한민국임시정부로부터 주미 제5행서 재무위원 겸 주미 제1행서 재무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937년도 대한인국민회의 하와이지방총회 학무부원으로 활동하였다. 1937년 10월 중일전쟁의 발발로 독립운동의 열기가 고조되어 대한인국민회와 동지회 간에 합동 운동을 펼칠 때 이를 적극 지지하며 독립운동의 구심력 회복에 나섰다. 1940년 12월 초 회장 김요한이 중심이 되어 한인상업회가 조직될 때 이사로 참여하였다.
199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