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Ho Beom Sh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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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Ho Beom Shi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인물(일반) |
지역 | 미국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35년 9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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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62년 |
수학 시기/일시 | 1964년 |
수학 시기/일시 | 1973년 |
활동 시기/일시 | 1992년 |
활동 시기/일시 | 1994년 |
활동 시기/일시 | 1999년 |
활동 시기/일시 | 2003년 |
활동 시기/일시 | 2006년 |
몰년 시기/일시 | 2021년 4월 12일 |
출생지 | 경기도 파주시 금촌 |
거주|이주지 | 미국 |
학교|수학지 | 미국 유타주 프로보 |
학교|수학지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
학교|수학지 |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
활동지 | 미국 워싱턴주 |
원어 항목명 | Ho Beom Shin |
성격 | 교육자|정치가 |
성별 | 남 |
본관 | 거창(居昌) |
대표 경력 | 워싱턴주 상원의원|컬럼비아대학교 교수|메릴랜드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1994년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내리 5선에 성공한 한인 정치가이자 교육자.
신호범[1935~2021]은 4세 때 고아가 되어 부랑 생활을 하였고, 이후 미군부대에서 일하다가 미군 군의관 에일 폴 박사에게 입양되어 16세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대학에서 30여 년간 강의를 하였고, 동양인 최초로 워싱턴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본관은 거창(居昌). 아내 도나(Donna)와 아들과 딸 두 자녀가 있다. 친동생으로 미국 시애틀에 거주 중인 신찬순이 있다.
신호범은 1935년 9월 27일 경기도 파주시 금촌에서 태어나 4세 때 고아가 되었다. 이후 남대문에서 부랑아로 노숙생활을 하다가 미군부대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미군 군의관이었던 에일 폴 박사에게 입양되어 16세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이 미국으로 입양된 신호범은 하루 3시간~4시간만 자고 1년 4개월 만에 미국 대입검정고시인 GED를 통과하였다. 이후 미국 유타주에 있는 브리검영대학교에서 1962년에 정치학 학사를 받았고, 1964년에는 피츠버그대학 공공국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에 워싱턴주립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메릴랜드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1992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한 신호범은 1994년 동양인 최초로 미국 상원의원[워싱턴주]에 당선된 뒤 연속 5선에 성공하였다. 특히 정치활동을 하면서 아시안계 미국인을 경멸하는 용어인 ‘오리엔탈(Oriental)’ 대신 ‘아시안(Asian)’을 쓰도록 법안을 제정하여 그 공로로 2003년에 ‘미국 최고 해외 이민자상’을 수상하였다. 또 신호범은 워싱턴주 정부가 ‘한인의 날’을 제정하는 데 기여하였고, 한미정치교육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미주한인 정치인 콘퍼런스, 차세대 리더십 포럼’을 개최하였다. 입양아였던 본인의 경험을 나누고 장학금을 제공하는 등 입양인의 아픔을 알고 보듬어 신호범은 ‘입양 한인의 대부’로 불리기도 하였다. 2021년 4월 12일 85세의 나이로 스노호미시카운티 자택에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신호범의 저술로 『공부 도둑놈, 희망의 선생님』[웅진, 1999]과 『기적을 이룬 꿈 남대문 거지 소년, 워싱턴주 의회에 입성하다!』[삼성문화사, 2006]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