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Baek Su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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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百洙 |
영문 | Baek Su Kim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세계)/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8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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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
활동 시기/일시 | 1914년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몰년 시기/일시 | 1946년 3월 24일 |
추모 시기/일시 | 2014년 |
출생지 | 강원도 강릉 |
거주|이주지 | 미국 하와이주 카우아이 |
활동지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
원어 항목명 | Baek Su Kim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미국 하와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백수(金百洙)[1880~1946]는 188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09년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섬에 있는 하리학가에 거주하며, 대한인국민회 하리학가지방회 총무를 담당하였다. 1910년 대한인국민회 길라위지방회 평의원 및 총무를 맡아 단체 운영에 참여했으며, 1914년에 대한인국민회 리후에지방회 총무로 활동하였다. 1921년부터는 카우아이 골로아에 거주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에 공채금 10달러를 납부하였다.
1930년대부터 활동 지역이 호놀룰루까지 확장되었다. 1930년대 하와이 한인들은 대한인국민회 조직을 정비하여 그동안의 내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분주하였다. 그 일환으로 1934년 6월경 호놀룰루 와이키키 공원에서 하와이 사회문제연구대회가 개최되었다. 기존 하와이의 대한인국민회 임원직은 총사직을 하고 새로운 간부단을 선출하였다. 김백수는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35년 임성우(林成雨)가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의 총회장으로 당선된 후 새롭게 구성된 집행부 중 실업부 임원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미국 하와이주 카우아이와 호놀룰루를 순회하며 독립금 수봉 업무 및 한인 통합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38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중한민중동맹단(中韓民衆同盟團)이 출범할 때 발기인으로 참석하였다. 중한민중동맹단은 한길수(韓吉洙)의 외교 운동과 순행 강연을 후원하는 데에서 출발하였다. 이후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과 발맞춰 미주 한인 독립운동의 선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김백수는 중한민중동맹단의 외연 확장에 노력하는 한편 차신호 단장 체제에서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또 독립 선전을 위해 미주 『독립』 신문의 재무로 활동하였다. 혈성금 및 독립금, 그리고 한미 승전 후원금 등을 납부하며 한국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46년 3월 24일 자택에서 심장병이 악화되어 호놀룰루 킨스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으나 사망하였다. 『국민보』[1946. 3. 27.] 및 『독립』[1946. 4. 10.]에서 사망 사실이 확인된다.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에서의 활동 및 중한민중동맹단 소속 당시의 활동 등이 인정되어 2014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