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韓人少年兵學校訓鍊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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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세계)/터 |
지역 | 미국 네브래스카주 헤이스팅스시 노스트 터너 애비뉴 800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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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미국 네브라스카주 헤이스팅스시 노스트 터너 애비뉴 800 |
원어 주소 | 800 North Turner Avenue, Hastings, NE 68901, USA |
영문 주소 | 800 North Turner Avenue, Hastings, NE 68901, USA |
성격 | 군사훈련지 |
1909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커니에 설립된 한인소년병학교 군사훈련 장소.
한인소년병학교는 애국동지대표회의에서 결정되어 설립되었다. 1909년 초 개신교도들이 많은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Nebraska)주 커니(Kearney)의 재미 한인 조진찬(曺振瓚)이 소유한 커니 농장에서 하기군사훈련학교의 일종으로 시작하였다. 그 뒤 1910년 헤이스팅스대학교(Hastings University) 구내로 옮겨 1914년까지 6년 동안 존립하였다. 박용만(朴容萬)은 한인소년병학교를 통해 장차 독립전쟁의 지휘관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15세에서 50세 사이의 한인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농사짓고 여가 시간에 군사훈련을 받았다. 박용만이 조진찬, 백일규(白一圭), 김현구(金鉉九), 김려식, 김장호 등과 함께 이곳에서 훈련하였다. 훈련을 위한 무기는 미군이 쓰던 중고 총기를 구입해 사용하였고, 학교 운영은 헤이스팅스대학교에서 제공한 약 8만㎡[20에이커]의 땅을 경작하면서 충당하였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개설한 한인소년병학교는 커니 농장에서 13명의 학생으로 시작하여 숫자가 점점 증가하여 나중에는 등록 학생이 총 170여 명이 되었다. 졸업생 수는 1911년과 1912년 8월 각각 13명을 배출한 것 외에는 확실한 수를 파악하기 어렵다. 박용만은 이 학교를 네브래스카주 정부에 정치단체로 등록하여 정식 인가를 받고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인소년병학교는 1912년 11월 박용만이 캘리포니아(California)주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 있는 『신한민보(新韓民報)』의 주필로 옮겨 간 후 박처후(朴處候)가 교장이 되어 유지하였으나 2년 후에 문을 닫았다. 그 지역의 재미 한인 인구가 줄어들어 인원을 계속 충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인소년병학교 훈련지는 헤이스팅스대학교 내에 있었다. 주소는 미국 네브라스카주 헤이스팅스시 노스트 터너 애비뉴 800이다.
2022년 현재 한인소년병학교 훈련지가 있던 곳 건너편에 헤이스팅스대학교 아트센터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한국의 독립을 꿈꾸며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초석으로 미국 내에서 1910년 한인소년병학교가 설립되어 대원들이 군사훈련을 받았다.